“재취업 막막한 베이비부머는 파견업체로.”

57년생으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이기권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의 말이다. 고령자 재취업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정부가 고령자 파견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이 기사화된 뒤 한 노사관계 전문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장관의 말처럼 파견업체가 좋은 곳이라면, 갈 곳 없어진 관피아들부터 가면 되겠다”며 뼈 있는 농담을 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파견 일자리가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라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베이비부머면 어떻고 관피아면 어떤가.

문제는 파견 일자리는 결코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반월·시화공단만 가 봐도 공장에서 일할 파견직을 구한다는 광고전단이 널리고 널렸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직을 투입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단속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법이 판을 친다.

이렇게 채용된 노동자들은 대개 최저임금 수준으로 평준화된 시급을 받는다. 생활비를 벌충하려면 야근과 특근은 필수다. 수입의 일부는 파견업체가 떼어 간다. 사회보험 적용률도 형편없다. 임금의 절대액수가 부족한 탓에 파견사업주가 사회보험료를 납부하는 대신 이를 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이 역시 불법이다.

문제는 또 있다. 소위 ‘바지사장’을 내세운 위장도급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 파견직을 사용하는 사용사업주(원청 사업주)들이 사용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마저 회피하는 길을 택한 결과다. 파견노동자를 위한 보호제도조차 엉망이다. 파견직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임금·근로조건 차별을 없애고자 차별시정제도가 도입됐지만, 신청건수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제도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일자리에 베이비부머를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내놓은 고령자 파견확대 방안은 전 업종 파견확대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붐 세대와 그들의 자식 세대가 불안정하고 열악한 일자리를 놓고 상호 경쟁할 날이 머지않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힘들어도 열심히만 일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자식 공부도 시킬 수 있으리라 꿈꿨던 마지막 세대다. 하지만 자식을 대학까지 보내는 데 3억원, 저축으로 집을 사려면 27년이 걸리는 사회에서 이들의 꿈은 ‘빚’으로 남았다. 고령자 파견확대 방안은 이들에게 죽을 때까지 빚이나 갚으라는 얘기다. 이런 구조에서 정부는 어느 세월에 경제를 활성하겠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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