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을살다

밀양 상동면 도곡마을에 사는 김말해 할머니. 올해로 여든일곱이다. 일제 강점기, 없는 사람들이 다 그랬듯 그도 결혼하면 일본군이 안 데리고 간다고 해서 열일곱 어린 나이에 산골짜기 이곳으로 시집이란 걸 왔다. 스무살 신랑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일본놈’들이 지독히도 쥐어짜서 먹고살기 힘들었다.

신랑은 일본 보급대 징집을 피해 고향을 비웠고 시아버지는 그만 일찍 세상을 떴다. 어린 아들 둘은 그만 바라보고. 서둘러 결혼해서 맞닥뜨린 세상이었다. 해방이 됐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신랑은 보도연맹 사건에 휘말려 실종되고 말았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찾겠다고 전국을 다니다 돌아가셨다. 그때 나이 스물넷. 죽을 둥 살 둥 살았지만 아이들 공부는 언감생심. 불쌍한 아들들. 첫째 아들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장애인이 됐다. 둘째 아들은 대구 공장에 취직해 평범하게 살았지만 그보다 앞서 죽었다. 서러워도 이렇게 서러울 수가. 그래도 그런 그를 여태껏 보듬어 준 곳이 밀양, 이곳이다. 그가 살 수 있었던 이유다.

“송전탑 저게 9년째 아이가. 언제 누가 살아도 여긴 물 좋고 공기 좋고. 손주들 와서 살고 누가 와도 다 잘살 낀데. 저게(송전탑이) 내려오면 이제 못산다.”

요새 김 할머니는 꿈을 꾼다. 조상님이 물에 빠져 살려 달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송전탑 막으러 나갔다가 몇 번을 까무러치고 피가 튀고 째져 꿰매고. 그의 속은 속이 아니다.

“이 골짜기에서 커 갖고 이 골짜기에서 늙었는데 6·25도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게는 안 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거는 밤낮도 없고 시간도 없고. 이건 마 사람을 조지는 거지. 순사(경찰)들이 지랄병하는 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그저 그가 살아온 유일한 터전, 밀양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 소박한 꿈을 지키기 위해 난데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김 할머니의 여든일곱 한과 추억이 담긴 밀양에서 송전탑은 ‘쑥쑥’ 크고 있다.

비단 김 할머니만의 이야기일까. 그저 고향이어서, 시집을 왔기에, 또는 새로운 삶의 터전 삼아 이곳에 뿌리내린 주민들은 기가 막힐 뿐이다. 일제 강점기, 아니 한국전쟁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른가. 대도시와 재벌기업을 위해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가게 길을 내란다. 당신들이 떠나면 되지 않느냐며. 없는 사람들은 그저 당하면 된다고. 그렇게 국가는 말한다.

<밀양을 살다>(오월의봄·1만6천원·사진)는 김 할머니를 비롯해 모두 15편의 밀양 주민 이야기를 오롯이 담고 있다. 농사지으며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던 이들이 왜 한전과 정부에 맞서게 됐는지,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왜 주민 뜻은 안 받아들이고 대안이 분명히 있는데도 아예 묵살하고 들어와 공사를 시작하고. 정부는 한전 편만 들고 경찰력 동원해서 한전을 비호만 하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포기보다는 끝까지 한번 해 보는 거지. 이러면서 견뎌 볼라꼬예. (…) 많은 사람들에게 송전탑이 얼마나 잘못됐고 이런 걸 알릴 수 있는 계기는 만들어 준 것 같아요. 다른 지역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더 잘 싸우지 않을까. 우리가 끝은 아닌 것 같으니까.”

<밀양을 살다>는 지난해 말 작가·인권활동가·여성학자 등 17명이 ‘밀양구술프로젝트’를 구성해 올해 2월 직접 밀양을 찾아가 주민들의 삶을 기록한 진실보고서다. 사진은 정택용 사진가가 맡았다.

2000년 765킬로볼트 송전탑 계획에 이어 2003년 송전선이 지나갈 경과지가 확정됐다. 한전은 2005년 주민설명회를 개최한 뒤 2007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2005년 마을마다 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때부터 밀양에서 집회는 일상사가 됐다. 그리고 2014년, 밀양 주민들의 싸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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