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아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지난해 여름, 70세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동자가 “자신은 휴게시간에도 근로를 제공했으므로 임금을 받아야겠다”며 찾아왔다. 학교 당직근무를 하던 사람이었다.

근로계약상 그 노동자가 수행해야 하는 당직업무는 학교를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시설관리를 하는 것이다. 당직실 안에서 CCTV 화면을 주시하면서 민원전화를 해결하고, 학교 폐쇄시간 이후 방문자에게 문을 열어 주거나 닫아 주는 업무를 했다.

근로계약서에는 평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15시간, 토요일 19시간, 일요일과 공휴일 24시간 동안 학교(근무지)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 그중 임금지급 의무가 있는 근로시간은 3분의 1 수준(평일 5시간·토요일·일요일 8시간)으로 확인됐다. 남은 시간은 모두 휴게시간(평일 10시간·토요일 11시간·일요일 및 공휴일 16시간)으로 약정돼 있었다.

그러나 당직업무의 상당 부분은 휴게시간을 불문하고 발생했다. 사업장별로 1인씩 근무하고, 장시간의 휴게시간 동안 휴게시간을 이유로 업무를 거부하면 해고나 불이익을 당했다. 휴게시간 동안 발생하는 간헐적 업무도 근무지를 이탈하지 못한 채 모두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노동자를 비롯해 일반적인 학교당직 노동자들이 학교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총 근로시간은 주평균 120여시간, 월평균 500~600시간 정도다. 보통의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월 174시간 정도의 근무를 하는 것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 시간이다. 그리고 보통의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근무 뒤 하루 16시간은 집에 가서 자유롭게 쉴 수 있고, 토요일·일요일·공휴일도 자유롭게 쉴 수 있다. 반면에 학교당직 노동자들은 1년 내내 학교 숙직실에서 쪽잠을 자야 한다. 명절이나 휴일에는 24시간 근무이기 때문에 가족과 1년 내내 명절이나 휴일을 함께 보낼 수 없다. 명절 연휴 등이 주말 전후로 연속되면 그 연휴기간 내내 텅 빈 학교에서 24시간 연속근무를 해야 한다.

현재 이 소송사건에서 사측은 주로 감시·단속적 노동자 업무는 근로내용이 힘들지 않고, 휴게와 근무시간 구분이 어려워 임금지급 근로시간을 임의로 약정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주장한다. 휴게시간 자유이용원칙과 대기시간에 대한 규정도 적용되지 않고, 휴게시간에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업무는 통상근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근무지 이탈 금지는 경비업무 본연의 내용에 따른 것이므로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이나 대기시간으로 볼 수 없어 추가임금 지급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 주장은 사실상 감시·단속적 노동자의 경우 휴게시간이나 근로시간에 대한 한계나 규제가 전혀 없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런 주장을 그대로 따르면 하루 24시간 중 1~2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사업장을 이탈하지 못하게 하면서 모든 간헐적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헌법 제32조3항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고 있다. 근기법은 또 휴게시간 자유이용원칙을 규정하고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보고 있다. 감시·단속적 노동자라고 해서 휴게시간·대기시간 판단에 있어 특별한 취급을 하고 있지 않다. 즉 근기법 해석상 아무리 감시·단속적 노동자라 하더라도 임금도 지급받지 못하는 장시간의 휴게시간 동안 휴게시간 자유이용이 보장되기는커녕 근무지 이탈이 금지된 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업무들을 모두 수행하며 숙직실에 갇혀 1년 365일 쪽잠을 자야 하는 근로계약까지 허용될 수는 없다.

아무리 근무내용이 힘들지 않고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라도 휴게시간에 수행된 근로제공에 대한 임금지급의무가 면제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측은 단지 감시·단속적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근로시간이나 휴게시간과 관련해 인간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저조건이 전혀 보장되지 않아도 무방한 것인 양 주장한다. 그것이 근기법에서 허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매우 위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올해 2월 국민권익위원회는 학교당직 노동자의 근로실태 조사를 통해 교대제나 격일제 근무 또는 적정한 근로시간 확보 같은 개선방안 마련을 교육부 등에 권고한 바 있다. 이 소식을 듣고 기쁜 목소리로 필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고령의 노동자를 기억한다. 부디 정부와 각 교육청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 말고 조속한 시일 내에 학교당직 노동자들의 인간 존엄성 보장을 위한 최저 근로조건을 명백히 해야 한다. 불합리한 근로계약을 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감시·단속적 노동자들에게 보장돼야 하는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 역시 다른 노동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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