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호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올해 5월 초 국내 굴지의 시멘트회사인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필자가 자문하고 있는 강원영동지역노조에 가입을 문의하고자 전화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차별 문제보다는 옥외광산에서 석회석을 채굴하는 작업이 위험하고, 분진도 심하고, 임금 소급분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관리자들의 횡포가 크다는 이유로 노조를 결성하고 싶어 했다.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삼척 지적도상 45·46·49광구 발파·채굴업무를 담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서울지역의류업노조 객공들의 부당해고 사건을 다루면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및 사용자성에 관한 판결을 찾으면서 잠시 봤던 이른바 광산의 '덕대계약' 판결문들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 1990년 이전 판결이었다. 2014년에 덕대계약이라니…. 설마했는데 나중에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나서 점점 의구심은 확신으로 돌아섰다.

덕대계약이란 광업권자가 광물의 채굴에 관한 자기의 권리를 제3자인 덕대(德大)에게 수여하고, 덕대는 자기의 자본과 관리하에 광물을 채굴하고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을 약정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만나다

삼척 석회석 광산에 관한 영상을 보면서 탄광을 상상했다. 삼척 45·46·49광구는 옥외광산으로 산을 통째로 발파·착암·채굴하는 곳이었다. 산 밑에서부터 마치 길을 닦듯이 지그재그식 길을 만들고 85톤의 육중한 덤프트럭이 거대한 돌더미를 운반했다. 덤프트럭이 지나는 길은 자칫하면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경사도가 급해 만약 비가 오거나 안개가 자욱한 날씨에서는 덤프트럭이 지나는 길이 움푹 패고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은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사내하청업체 ㈜동일 소속의 노동자 총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민주노총 동해사무실로 향했다.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가 결성된 이후 총회까지 보름 만에 하청업체 동일 소속 노동자의 70% 이상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도 현장에서의 뜨거운 요구가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사내하청노조의 싸움이 장기전이 되는 현실에서 앞으로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총회를 지켜봤다.

불법파견 이전에 원청과 근로관계 형성

총회 전 불법파견에 관한 간단한 교육을 의뢰받은 상황에서 필자는 관련 판례와 판례평석을 통해 덕대계약은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에 따른 고용의제 이전에 광업법 위반에 따른 법률상 무효이며, 원청인 동양시멘트와 직접 고용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봤다. 광업법 제8조는 광업권이나 조광권자는 채굴권에 조광권이 설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이유로도 광업권이나 조광권을 타인이 행사하게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광업권(조광권) 등기를 확인해 보니 석회석에 관해 광업권은 동양시멘트와 다물제이호(동양시멘트 자회사)로 설정돼 있었고, 사내하청업체 동일에는 조광권조차 설정돼 있지 않았다. 명백한 광업법 위반이었다.

그래도 '산 넘어 산'

광업법 위반이라고 해도 불법파견 문제를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실 광업법 위반에 따른 처벌과 별개로 고용관계에 관한 사법상 효과를 발하기 위해서는 민사소송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시간과 돈이 문제였다.

일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동양시멘트와 사내하청업체 동일에 대해 불법파견 혐의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현재 1차 조사가 이뤄졌고 조만간 현장조사 이후 결과가 나올 것이다. 만약 사측에서 동일과 같은 사내하청업체의 실체를 주장한다면 이는 광업법을 위반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각 광구별 동양시멘트 관리자들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여러 개의 정황증거를 확보한 상황에서 불법파견 인정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최근 삼척MBC 강원365란 프로그램에서 동양시멘트 불법파견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특히 영상에서 “앞으로 비정규직과 대화를 나눠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동양시멘트 직원의 발언은 압권이다. 동양시멘트 스스로 불법파견을 자인한 것이다.

불법파견이 인정되고 옛 파견법상 고용의제가 적용될 수도 있으나, 현행 파견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가 기업회생절차 개시 중인 관계로 고용의무가 면제되는 파견법의 한계에 봉착한다. 회생절차를 빨리 졸업하는 것을 기대해 본다고 하더라도 향후 최소 2년 이상이 예상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많은 어려움에도 시멘트 직접 제조공정과 출하업무를 담당하는 또 다른 하청업체 두성기업 노동자들이 얼마 전 이 투쟁의 대열에 새로 합류했다. 올여름 더위와의 싸움을 끝으로 이 투쟁이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길 바라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지난해질 수 있는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철폐투쟁에 매일노동뉴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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