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한국 사회는 노동자 국회의원 김득중이 꼭 필요합니다.” 지난 15일 ‘무소속 김득중 후보 지지 사회각계대표자모임’이 주관한 기자회견의 현수막이었다. 이날 평택역광장에서는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쌍용차 해고자 김득중을 지지하는 사회각계인사가 참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국회의원 15명을 선출한다는 7·30 재보궐선거에서 사회각계인사들은 이렇게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득중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필요하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뉴스에서 이 현수막을 본 나는 한국 사회가 노동자 국회의원이 꼭 필요하다고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 봤다. 기자회견을 한 사회각계인사들은 노동자 국회의원 김득중이 꼭 필요하다고 기자회견으로 호소했다지만 평택을 선거권자들은 그가 필요하다고 투표로 응답할 것인지 생각해 봤다. 잠시였지만 나는 노동자 국회의원을 생각해 봤다. 단순히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후보라고 선언하고서 당선된 국회의원을 말하는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 국민은 그런 노동자 국회의원을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2. 진보단일 노동자후보라고 쓰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진보의 당이라는 통합진보당·노동당·정의당·녹색당 등이 후보를 내지 않고 모두 김득중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 그러니 평택을에서 김득중이 진보단일 후보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이니 노동자후보인 것도 분명하다. 진보단일 노동자후보,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민주노동당을 창당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던 10여년 전에도 진보단일 후보는 있었다. 그때는 굳이 진보단일 후보라고 쓰지도 않았다. 민주노총 조합원 중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하면 진보단일 노동자후보라고 쓰지 않고서도 그는 당연히 진보단일 노동자후보였다. 잊혔던 이름이 나타났다. 그래서 진보단일 노동자후보 김득중이 반가웠다. 기자회견의 현수막을 보고 또 봤다. 10여년 동안 진보를 가르고 당을 쪼개고서 전개된 이 나라의 진보정당운동이었다. 그래서 노동자후보 김득중이 진보단일이란 게 나는 반가워서 현수막을 읽고 또 읽었다. 평택을에서는 노동자후보 김득중을 단일후보로 지지하고 진보는 당파를 가르지 않았다. 그리는 세상이 다르고 싸우는 전략이 다르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지만 평택을에서는 예외였다. 하나의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 진보정당들은 노동자 국회의원 김득중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3. 김득중은 평택에 공장을 둔 쌍용차 해고노동자다. 정리해고 당시부터 끈질기게 투쟁해 온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조합원이고 현재 지부장이다. 쌍용차투쟁은 대한민국의 정리해고투쟁이다. 2009년 정리해고 저지투쟁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의 거리와 광장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폐를 외쳤다. 이 쌍용차투쟁이 김득중을 진보단일 후보로 만들었다. 당 대 당의 후보단일화 논의도 아니고 후보들 간의 양보도 아니고 정리해고 철폐투쟁이라는 노동자권리를 위한 자신의 투쟁으로 노동자는 진보단일 노동자후보로 진보의 당들이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평택을 후보로는 정리해고 투쟁을 전개해 온 쌍용차지부가 정한 노동자후보이면 진보단일 후보로서 충분했다. 이 나라에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 노동자는 진보단일 후보로 될 수 있었다.

4. 무소속이다. 김득중 후보는 어떤 정당 소속도 아니고 무소속이다. 진보의 당이라는 통합진보당·노동당·정의당·녹색당 등 어떤 당의 후보도 아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공보에서 무소속이라고 기재된 후보이다. 이것이 10여년 전 진보단일 노동자후보일 수 있었던 민주노동당후보 아무개와 다르다. 어찌 보면 당이 없으니 김득중은 진보단일 노동자후보일 수 있었다. 통합진보당도 노동당도 정의당도 녹색당도 그의 당이 아니었으니 그 당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무소속이면 지지할 수 있지만 다른 당의 후보는 지지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사실이다. 오늘 이 나라 진보정당운동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런 사실을 비난하거나 이런 사실에 절망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오늘 이 나라 진보정당운동을 보여 주는 징표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진보정당은 지금 진보를 자신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만 같을 뿐 이렇게 분명히 다르다. 하나가 아니다. 그리는 세상이 다르고 싸우는 전략도 다른, 서로 다른 당으로 존재할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함께하기보다 더 함께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당으로 서 있다. 솔직히 기치로 내걸고 있다는 그 진보가 같은 색의 진보인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5. 내일은 30일이다. 평택을에서 노동자 국회의원 김득중이 꼭 필요하다고 투표할 것이라고는, 그래서 진보단일 노동자후보가 선출될 것이라고는 나는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정장선과 새누리당 후보 유의동보다 훨씬 밑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지난주 세월호 참사로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의당과 사실상 후보단일화를 이뤄냈다. 동작을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가 사퇴해 정의당 노회찬 후보로 단일화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택을에서는 노동자후보 김득중을 야권단일후보로 지지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사퇴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국회의원 김득중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노동자후보 김득중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어렵다. 평택을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국회의원 김득중이 꼭 필요하다고 알고 있다면 김득중 후보를 지지한다며 사퇴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는 다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당선을 위해 끝까지 갈 것이다. 진보로는 단일후보일 수 있었지만 야권으로는 단일후보일 수가 없는 노동자후보 김득중은 여야의 1대 1로 맞붙어야 하는 이 나라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동자 국회의원으로 이른바 정리해고법을 입법한 대한민국 국회로 들어갈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건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득중이 무소속 진보단일 노동자후보로 출마하는 순간부터 예정돼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국회의원 김득중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이 나라 국민은 정리해고법을 폐지하기 위해 그를 국회로 들여보내기 위해 투표하지는 않는다. 평택을에서 투표할 평택시민은 자신이 평택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데 적임자라고 다투어 공약하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다. 노동자라도 김득중이 아닌 그들에게 투표할 것이다. 노동자라도 김득중이 자신을 위한 후보라고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노동자라도 노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노동자후보가 아무리 노동자를 위한다고 공약하고 말해 봐야 그는 노동자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이 나라의 선거권자 중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노동자만 투표해도 노동자후보가 국회의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할 수 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자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당선가능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해서 대한민국은 그들이 권력을 차지한 나라가 됐다. 노동자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자로서 나는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법을 입법하는 후보들에게 투표해 왔다. 이런 노동자들을 두고서 정권심판을 위해 통 크게 민주의 당후보로 단일화했다고 선전해 봐야 소용없이 일이다. 단일화로 양보했다고 다음에는 진보의 당, 노동자후보에게 투표할 거라고 기대할 수 없다. 이런 국민을 두고서 단일화된 민주의 당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단일화에 손뼉을 쳤다고 환호해 봐야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은 민주의 당후보를 지지해서 투표한 것이다. 그들은 민주의 당후보가 당선되기 위해 단일화로 기여한 것에 손뼉을 쳤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노동자후보가 사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민주의 당후보에게 한 표가 아까운 상황에서 쓸데없이 노동자후보가 나와 심란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바로 이렇게 척박한 나라에서 노동자후보 김득중은 이번 재보선에 출마한 것이다. 그가 노동자후보라면 사퇴를 모르고 완주할 것이다. 그는 이미 야권단일화를 위해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 후보는 당연하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 대해서도 노동자후보라서 그는 이 나라 노동자정치운동에서 특별하다. 노동자의 기치를 내리지 않는 노동자후보라서 특별하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민주의 당후보와의 야권단일화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한 어렵다. 오히려 민주의 당과 맞서서라도 노동자의 기치를 세워 내야 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노동자 국회의원 김득중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김득중이 끝까지 사퇴하지 않고 노동자후보로 완주하는 데 대해 박수를 보내 줘야 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노동자의 기치를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하는데서만 노동자에게 단일화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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