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제조업의 많은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했어요.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 외면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의식주를 빼고 사람이 살 수 있나요. '의'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잖아요.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을 게 아니라면 섬유산업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산업입니다."

권영덕(56·사진) 섬유유통노련 위원장의 말이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화곡동 연맹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권 위원장은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공공근로에 예산을 쓸 게 아니라 노동집약적 섬유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피아 비판하기 전에 노피아 없는지 돌아봐야"

- 지난달 23일 임원선거에서 박빙의 승부 끝에 당선됐다. 기가 막힌 표 대결 때문에 한국노총에서 두고두고 회자가 됐는데.

“한국노총 산별연맹 선거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선거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1차 투표에서 전 위원장인 오영봉 후보와 43대 43으로 동표가 나왔다. 2차 투표에서도 동표가 나오면 두 후보 모두 자격박탈이 된다. 결선투표 결과를 기다리는데 피가 마르더라. 결국 2차 투표에서 44표를 얻어 2표 차이로 이겼다.”

- 1차 투표와 2차 투표 사이에 한 표가 변심을 한 것인데, 선거 이후 표 주인이 밝혀졌나.

“그게 어떻게 밝혀지겠나. 선거에서 이기니 모두 자기가 마지막 한 표의 주인공이라고들 하더라.(웃음)”

- 2008~2011년 연맹 위원장을 역임한 뒤 이번에 다시 출마했다. 출마를 결심한 동기는.

“쓸데없는 의협심이나 정의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노피아를 척결하고 싶었다. 각종 매체에서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면서 관피아니, 해피아니 이야기를 하는데 노동운동 주변에 '노피아'는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조합원을 위한 노동운동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고 보존하려고 하는 '말로만 노동운동가'들이 있다. 조합원들은 정년이 되면 더 일하고 싶어도 직장에서 쫓겨나는데 위원장은 자기만 정년을 연장해 또 위원장을 한다. 조합원 자격이 없어 위원장 출마를 못하게 되면 노조를 갈아탄 후 위원장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런 행태는 옳지 않다. 사라져야 한다.

노조와 위원장은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이고 법을 지키는 존재여야 한다. 제일의 가치는 정직성과 도덕성이다. 상급단체로 올라갈수록 이런 부분에서 자신이 있어야 한다.”

"정부 지원 절실한 섬유산업, 고용인원 많다고 혜택 못 받아"

- 섬유산업에서 활로가 안 보인다. 임기 동안 가장 시급한 과제를 꼽는다면.


“우리 연맹은 한국노총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에서도 철도노조 다음으로 만들어진 노동단체다. 당시 연맹 조합원이 17만명에서 20만명에 이르렀다. 지금도 그렇게 큰 규모의 산별조직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공장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섬유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될 수 없다. 옷 안 입고 살 수 있나. 섬유산업이야말로 인류 역사와 함께 할 산업이다.

섬유산업은 노동집약적이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서 섬유산업에 주는 혜택이 없다. 예컨대 섬유업체 중 연매출이 1천억원 이상 되려면 직원수가 적어도 400~500명은 돼야 한다. 이럴 경우 고용인원이 많기 때문에 대기업으로 분류된다. 세제혜택이나 고용지원 혜택을 거의 못 받는 상황이다. 반면에 매출액이 2천억~3천억원 하는 벤처기업들은 고용인원이 100명이 안 된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는다. 고용을 많이 한 섬유업체들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연간 매출액이 훨씬 많은 벤처기업보다 못한 처우를 받는 것이다.

상시근로자 기준으로 기업 규모를 구분하는 것은 고용창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공공근로가 아니라 노동집약적인 섬유산업을 키워야 한다. 임기 동안 섬유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를 위해 열심히 뛰어 볼 생각이다.”

- 연맹은 올해 초 ‘섬유패션산업 외국인력 활용전략' 포럼을 통해 섬유패션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외국인력 확대와 최저임금 유연화를 제시했다. 노동계에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지난 집행부에서 섬유산업연합회와 올해 2월 해당 포럼을 연 것으로 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유연화는 연맹에서 받아들일 수 없기에 논의에서 빼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먼저 섬유산업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섬유산업은 중소기업 위주의 스트림(생산공정)형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업스트림인 원료·화섬·면방을 거쳐 미들스트림인 직물·염색가공 단계로 다시 다운스트림인 의류·기타 섬유제품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생산공정으로 분업화돼 있다. 현재 업스트림은 대기업 위주이지만 나머지 생산공정은 중소기업 내지 영세한 소규모 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맹 조합원들의 65.8%가 업스트림에 몰려 있다.

문제는 미들스트림에서 인력난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경기 북부 염색산업단지와 안산 반월공단에 염색·가공업체들이 밀집해 있는데, 그곳을 가 보면 내국인 노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인 고용이 불가피하지만 외국인력 도입쿼터 때문에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암암리에 고용하는 실정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미들스트림 단계가 무너지면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노동자도 고용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연맹은 협회와 공동으로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들스트림 활성화 문제는 연맹 조합원의 고용 문제와 직결돼 있다.”

"통상임금·노동시간단축은 노사정 대화로 풀어야"

- 노동계 최대 이슈는 통상임금과 노동시간단축이다. 섬유산업은 분위기가 어떤가.


“올해 임금·단체협상이 예년과 비교해 많이 늦어지고 있다. 통상임금과 노동시간·정년연장 등 메가톤급 이슈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맹에서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대공장들은 통상임금 범위 확대를 어느 정도 사측에 양보하고 임금인상과 복리후생적 금품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추세다. 오히려 중소조직들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적극적이다. 최저임금을 겨우 맞추고 있는 중소기업은 연장근로를 통해 임금을 어느 정도 보전받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노사정 대화를 통해 노사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회에서 법으로 처리하기에는 여야 모두에게 큰 부담일 것이다. 국회에서 할 수 없다고 본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밑에서부터 실무를 닦은 실력자여서 믿고 있다.”

- 올해 임단협을 계기로 제조연대 공동투쟁이 부활하고 있다. 제조연대 활동에 함께할 생각인가.

“2001년 1월16일 공식 출범했던 제조연대가 2005년 한국노총 선거 등에 대한 입장 차이로 소강 국면이었다가 내가 연맹 위원장을 맡았던 2009년 6월부터 이른바 '제2기 제조연대'가 출발했다. 전 세계적으로 굴뚝산업 발전 없이 경제가 성장한 나라는 없다. 제조업 현안과 관련해 제조연대에서 한목소리를 낼 것이다.”

- 연맹이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장기 비전이 궁금하다.

“1만원도 안 되는 옷들이 국내브랜드로 팔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대부분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OEM(주문자 상표 제품의 제조) 생산 방식으로 수입해 온 상품이다. 의류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두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섬유로 먹고사는 사람 비율이 10% 가까이 되지 않을까. 정부가 섬유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해외로 나간 공장들이 다시 국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연맹이 앞장설 것이다.”

글=김미영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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