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현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대전충청지부)

지난달 어느 날 오랜만에 반가운 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2008년 노조를 만들어 지회장으로 활동하다 그해 12월 징계해고를 당하고 5년여 동안 법적 다툼을 해 오고 있었다. 내용을 들어 보니 대법원에서 지회의 잔업·특근 거부의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를 사유로 한 해고 역시 부당하다는 판결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축하인사로 전화를 끊고 급히 판결문을 찾아 읽어 봤다. 재판부는 “조합원들의 잔업 및 특근 거부가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그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잔업 및 특근 거부가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케 할 수 있는 위력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업무방해죄에 관한 기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재확인하고 원심을 파기했다.

그런데 필자가 더 관심 있었던 것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조합원들의 잔업·특근 거부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 이를 쟁의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필자가 이해하기로 이 사건은 조합원들이 잔업·특근 지시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조합원들에 대해 선별적·차별적으로 잔업·특근을 배치하지 않은 결과로 쟁의행위의 외양이 만들어진 것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매일 잔업희망 여부를 조사하면서도 비조합원들과 달리 일부 조합원에게는 이를 건너뛰었다. 나중에는 모든 조합원에 대해 잔업 여부 조사 자체를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는 어떤 조합원은 잔업·특근을 하고 어떤 조합원은 하지 않거나, 평조합원은 잔업·특근을 하지 않는데 오히려 조합간부는 잔업·특근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잔업·특근의 부분적 공백 자체가 사용자의 사전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때문에 조합원들의 업무 공백 역시 관리직 사원 투입, 신규사원 채용 등 체계적으로 대체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쟁의행위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3개월의 기간 동안 회사의 매출실적은 오히려 증가했다. 반면에 조합원들은 월 평균임금에서 잔업·특근에 따른 시간외수당의 비중이 대략 30~40%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잔업 및 특근의 배제로 인해 상당한 생활상 불이익을 입고 있었다. 이는 노조설립 초기에 조합원들의 조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법원은 “범죄사실의 인정에 필요한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며 조합원들이 잔업·특근을 집단적으로 거부한 것이라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고 있었다.

판결문을 읽으면서 문득 하급심 재판을 방청했을 때 판사의 날 선 비판이 생각났다.

“피고는 회사가 잔업·특근을 시키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회사가 조합원들에게 잔업·특근을 시키지 않아서 매출 감소를 가져온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인가?”

그에게 조합원들이 자신의 임금손실을 감수하고 쟁의행위로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할 가능성은 있어도 사용자가 자신의 매출손실을 감수하고(실제로는 매출손실도 없었다) 노무수령거부로 노동자의 임금손실과 노조의 조직력 약화를 꾀할 가능성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잔업·특근 거부였는지 잔업·특근 배제였는지 다툴 수는 없게 됐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은 계속 남는다. 실제로 사용자에 의한 차별적 잔업·특근 배제가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사용자의 잔업·특근 배제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선입견에 눈이 멀어 조합원들의 잔업·특근 거부로 결론지어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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