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할머니, 거기는 왜 다치셨어요? 어디서 넘어졌어요?”

“할머니, 오늘 초복이라서 닭죽 했으니까 점심 꼭 드세요.”

할머니들을 마주칠 때마다 말을 걸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못 알아들을까 봐 목청을 높였다.

한국노총에서 기획조정본부장과 사무처장, 중앙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한 이용범(54·사진)씨. 2008년 봄을 마지막으로 노동계를 떠났던 그를 지난 18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남면의 깊은 산골에 있는 강촌노인요양원(gcyoyang.kr)에서 만났다. 사회복지법인 한아름 이사장이자 강촌노인요양원 원장이다.

요양원이 개원한 것은 올해 5월. 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개원 두 달 남짓 된 탓에 10명의 노인만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한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함께 생활하다보면 언제 어디서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살면서 이렇게 긴장한 적이 없었다”며 “조그만 소리만 들려도 무슨 일이 났나 싶어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공천 도전 실패 뒤 찾아온 ‘새 인생’

이용범 이사장은 전직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다. 1980년대 후반 한국노총 소속 섬유노련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 몸담았고 민주노총 대변인까지 지냈다. 97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 춘천시당 위원장을 시작으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기획위원도 거쳤다. 2005년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으로 노동운동에 복귀했고, 2년 뒤에는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이사장은 얼마 안 가 다시 한국노총 사무처장으로 돌아갔다. 2007년 말 한국노총이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책연대를 하자, 그는 이듬해 4·9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로 춘천지역구 공천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는 “노동계와 정치권에서 기반을 잃고 사방이 막혀 있다고 느낀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랬던 이 이사장이 복지법인 이사장을 맡은 것은 2009년 중반이었다. 총선 도전에 실패하고 1년6개월여간 백수로 살던 중에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93년에 설립된 뒤 재정이 악화된 법인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평소에 “나이가 들면 사회복지사업을 하자”고 부인과 얘기해 왔던 터였다. 2006~2007년 국무총리실에서 자신이 실무를 맡았던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연석회의 논의는 나중에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는 출발점이 됐다.

이사장을 맡은 그는 소년소녀가장 주거지원을 주로 했던 재단사업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춘천시내에 아동센터(공부방)를 만들었고, 노인요양시설을 짓기 위해 땅을 매입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2009년 어렵사리 마련한 땅이 하필이면 산업용 부지였다. 다행히 “공익을 위해 땅을 써 달라”는 종교인이 나타나 지금의 부지를 싸게 마련했다. 건축허가까지 났다. 그런데 주민들이 요양시설 건립에 반대하고 나섰다. 법정공방을 벌여야 했다. 지난해 3월에야 공사를 시작했고, 올해 5월 강촌노인요양원을 개원했다.

“노인요양원은 수용시설 아닌 사회복지시설”

노동운동과 정치인 생활을 했던 이 이사장에게 사회복지사업가의 길은 익숙지 않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언론홍보·대외협력·기획 등 이른바 ‘전체 판을 돌리는’ 일을 주로 했던 그가 개개인의 삶의 문제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는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 누워서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중병에 걸린 어르신들을 돌보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나이 들고 병든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자신의 부모를 요양원에 두고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가족들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사실 돌봄이라는 것은 집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지요. 아니면 집에 있는 것처럼 해야 하거든요. 집에서도 걱정 없이 어르신들을 모실 수 있게, 각 가정에 요양보호사들이 들어가 어르신들을 돌볼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니까 시설을 짓게 되는 겁니다. 시설은 가장 후진적인 복지라고 생각해요.”

이 이사장은 최근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수용시설이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이라는 모토로, "어르신들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슬로건에 걸맞은 내용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시설을 방문한 가족들이 부모와 함께 하룻밤 묶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지을 계획이다.

사용자가 돼서야 깨달은 ‘노동의 소중함’

사회복지사업을 하면서 그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사용자’가 됐다는 점이다. 비록 비영리법인의 이사장이고, 요양시설 원장이지만 10명의 직원들을 채용한 사용자가 된 것이다.

노동운동을 할 때 입에 달고 살았던 ‘노동자’라는 말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개원을 준비하고, 개원한 이후에 직원들이 보여 준 열정과 헌신에 고개가 숙여졌다"고 말했다.

“사실 노인들을 돌본다는 것은 친자식들에게도 어려운 일이거든요. 대소변 받아 주고 말동무 해 주고. 감정표출 하는 것들도 다 받아 줘야 합니다. 직원들이 정말 존경스럽더라고요.”

이 이사장은 “헌신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이 세상의 일이 돌아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생긴 고민도 있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다반사다.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시설 사용자들이 수두룩하다.

이 이사장은 근기법에 맞춰 직원들의 노동조건을 설계했지만,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직원들에게 첫 월급을 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수익구조가 장기요양보험료에 의존하는 데다, 비영리법인인 탓에 재정을 이러저리 굴릴 수도 없다. 보험료 지원 중심이 아닌 국가재정의 투입, 보험료 인상 등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개선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는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실력이나 열정에 비해 처우는 열악해도 너무 열악하다”고 답답해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강촌노인요양원에 노조가 생기면 이 이사장은 어떻게 대처할까. “어용노조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그는 분석부터 했다.

“최근 노동계가 돌봄노동자 문제에 눈길을 돌린 것은 아주 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노동조건을 마냥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단언컨대 (노조 설립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것도 개별노조가 아닌 전국노조로 활성화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답변을 내놓았다.

“직원들이 어르신들 관점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사용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노동자들의 권리인 노조설립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회복지 종사자 노동조건 개선하는 역할 하고 싶다”

이 이사장은 이제 걸음마를 뗀 요양원이 자리를 잡으면 장기적으로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활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발언권이 너무 약해요. 노동운동은 진영은 그래도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들까지 배출했잖아요. 앞으로 사회복지 관련 협회나 유관단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종사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그는 최근 20여일밖에 일하지 않는 요양원의 한 사무직을 내보냈다. 사용자들이 종종하는 권고사직이었다. 이 이사장은 이에 대해 "요양보호사·간호사·물리치료사를 관리하려 들지 말고 지원한다고 생각하라고 강조했는데, 공무원 출신인 그 직원이 시종일관 관리자 모드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이곳은 수용시설이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입니다. 어르신들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종사자들이 행복해야 어르신들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제 운영 철학이에요. 그래도 노동운동을 했던 이용범이라는 사람이 사회복지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적어도 '다른 시설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는 들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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