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의료원노조

한국노총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산별조직 대표자를 맡았다. 조합원 83%가 여성인 상황에서 늦었지만 자연스러운 결과다. 의료산업노련 이야기다. 이달 초 조민근 전 위원장이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수진(45·사진) 위원장 직무대행이 그 뒤를 이었다. 임기는 내년 12월까지다. 이 직무대행은 연세의료원노조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조직확대와 산별노조로 가는 초석 마련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대다수 조합원들이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감안해 조직별로 갈등치유 노하우를 전파하는 것도 주요 목표다. 아울러 조합원들의 노동강도 완화와 비정규직 끌어안기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신촌동 연세의료원노조 사무실에서 이 직무대행을 만났다.

"의료정책 노정 대화 채널 부재 아쉽다"

- 연맹 위원장 직무대행을 어떻게 맡게 됐나.

“연세의료원노조 선배이자 조민근 전 위원장이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노총 중앙교육원장까지 맡으면서 무척 바빠졌다. 매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까지 참석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연맹 일까지 돌보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조 부위원장의 부담을 덜어 주고 보다 활발한 연맹 활동을 위해 지난달 초 노조 대표자들과 회의를 열고 직무대행 체제로 가기로 결정했다.”
- 병원 현장은 의료 민영화와 사학연금 개정 문제로 시끄럽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가 의료 민영화를 막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병원 현장노동자들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의료법인 부대사업 범위 확대와 자회사 설립을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과 가이드라인을 밀어붙였다. 정부의 잘못이지만 노동계도 사전에 정부와의 대화 창구를 만들지 못했다.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민주노총보다는 상대적으로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많이 확보해 왔던 한국노총에 특히 아쉬운 대목이다.

공무원연금제도가 바뀌면 2~3년 이내에 사학연금도 바뀐다. 신규 입사자에게만 적용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 연금까지 소급해서 적용하는 것은 노동자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합원 대다수가 연금 개악 내용을 잘 모른다. 연대단위와 함께 연맹 차원에서 조합원 홍보활동을 강화해 함께 싸울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

의료 민영화에 대해서는 사실 내부에 온도차가 있다. 현실적으로 파업은 어렵다. 함께 활동하고 있는 ‘의료 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와 함께 연맹의 역할을 만들어 가겠다.”

- 조직확대를 목표로 세웠는데.

“병원 사업장 중 노조가 없는 곳이 태반이다. 중소병원이나 동네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500인 이상의 규모를 갖춘 병원 사업장도 노조가 없는 곳이 많다. 97년 연맹 설립 멤버였던 순천향대와 연세대 이후 조민근 전 위원장 시절에 인하대와 건국대가 들어왔지만 외형적으로는 초창기와 큰 차이가 없다.

연맹 상근간부가 1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많은 난국이 있겠지만 공격적인 조직화 사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내부 교통정리를 먼저 해야 한다. 위원장끼리의 친분을 이유로 한국노총 지역본부에 가입하거나 성격이 전혀 다른 산별로 가는 경우가 있다. 한국노총 전체 조직력 강화 차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맹 홍보책자를 새로 제작하고, 한국노총 지역본부에서 시작해 조직력 확대를 위한 홍보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현재 연맹 가입을 추진 중인 조합원 1천명 규모의 사업장이 두 군데 있다. 임기 동안 연맹의 몸집을 키우는 데 주력할 것이다.”

"임기 중 산별노조 설립기반 닦겠다"

- 산별노조 추진의사도 밝혔는데.

“우리 조직처럼 크지 않는 연맹들은 산별노조로 뭉쳐야 한다. 한국노총 내 교육·정부 유관기관은 연맹 사업장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유사한 지점이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의료연대본부가 있듯이 말이다. 한국노총 내에서도 의료기관과 성격이 겹치는 사업장들이 하나로 모여 산별을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맹과 사업장 간부들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큰 정책과 큰 투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임기 중 산별노조 설립을 위한 기반을 닦겠다.”

- 병원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증가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현대와 삼성자본이 운영하는 재벌병원들이 생겨났다. 이후 의료 철학에 있어 보수적이었던 사립대 병원들조차도 대기업의 인사노무 관리시스템을 따라하고 있다. 병원이 환자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추구에 골몰하게 된 것이다. 정부마저 공공의료 확충이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신 민간에 대부분의 역할을 맡기고 있다.

이로 인해 병원노동자들의 노동량이 나날이 늘고 있다. 보건의료는 기본적으로 노동집약산업이다. 현장에서는 인력부족에 허덕인다. 병원 운영에 드는 비용 중 절반이 인건비다. 비중이 큰 만큼 사측은 어떻게든 이 비용을 줄이려 든다. 얼마 전 일어난 장성요양병원 화재사고도 결국은 인건비를 줄이려다 발생한 참사였다. 우리나라 환자당 간호사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국회가 하루속히 보건의료인력 지원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JCI(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 등 각종 의료기관 평가제도도 문제다. 심지어 일부 병원은 인력부족을 감추기 위해 평가기간에는 환자 예약을 수용가능 인원의 70%만 받는 꼼수를 부린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의료기관 평가는 병원노동자들의 노동강도만 높일 뿐이다.”

- 간호사들의 감정노동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연세의료원노조가 ‘감정노동 상담 코칭 지원센터’를 세웠다. 의료기관에 병원노동자들을 위한 감정노동 상담소가 처음으로 마련된 것이다. 연맹 조합원 대다수가 여성이다. 하루 종일 환자와 보호자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민감해지기 쉽다. 수직적인 조직문화 탓에 상습적으로 폭언에 시달리고,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노조에서 얻은 경험을 연맹 활동에 반영할 것이다. 산하 조직에 담당 간부를 두고 주기적으로 수준 높은 갈등치유 교육을 진행하고, 현장에서 조합원들에게 이를 전파하도록 할 것이다. 최근 고용노동부에 이 같은 활동 계획을 제출해 지원을 약속받았다. 관련기관과 MOU를 체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병원 비정규직 지침 만들겠다"

-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병원 사업장에는 청소·주차·급식 등 외주화한 사업부문에서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다. 얼마 전 연세의료원 청소용역업체 사장과 청소노동자 간 임금·노동조건 저하 없는 고용승계를 위해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연맹 산하 조직들이 자기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을 끌어안고 가는 방안을 모색할 생각이다. 먼저 사업장별로 비정규직의 채용형태와 규모를 분석해 데이터를 만들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맹 차원에서 각 사업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비정규직 지침이나 매뉴얼을 만들어 이를 이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맹 대표를 맡았는데.

“연맹 최초이자 한국노총 산별 중에서도 최초다.(웃음) 연맹의 경우 워낙 여성들의 역할이 크다. 남성 조합원들이 농담 삼아 ‘역차별 당한다’, ‘남성위원회 만든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한국노총 전체로 보면 아쉬움이 크다. 예를 들어 6년 전 한국노총 부위원장 중에 여성 몫이 주어졌지만 아직도 비상근이다. 한국노총이 여성부위원장을 액세서리가 아닌 노동운동 동반자로 본다면 다양한 유형의 할당제를 고민해야 한다. 여성 대표자로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겠다.”

- 연맹 활동에 있어 아쉬운 점과 향후 계획은.

“앞서 얘기했듯이 조직력을 확대하지 못했다. 조민근 전 위원장 시절 대학병원 2곳과 몇몇 중소병원들이 가입하면서 상황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연맹이 단위노조의 고충과 교섭상황·병원수익 문제를 한곳으로 응축해 양질의 보건의료정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 대정부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노총 안에서의 힘과 역할도 주어질 것이라고 본다. 연맹이 올해로 창립 15년을 맞았다. 앞으로 20년, 30년 후를 바라보고 비전을 제시할 때다. 최근 산하 노조 위원장들이 많이 바뀌었다. 이들을 포함해 여러 노동전문가들을 다양하게 만나 연맹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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