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주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대구지사)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를 조금만 살펴보면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는 것이 ‘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법의 적용 여부를 떠나 다른 제반 관계에서도 인종·성별·사회적 신분 등에 의해 손쉽게 차별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차별을 당연시하는 현상들이 더욱 커지고 있는 듯하다.

한 회사에서 10년을 근무한 어느 이주노동자는 부친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퇴사했으나 퇴직금을 받지 못해 고용노동청에 사건을 접수했다. 회사 관계자라고 나온 관리자는 이주노동자가 자기 회사에서 근무한 기간은 퇴사하기 직전 딱 두 달뿐이라고 주장했다. 그 회사에서 10년이라는 기간을 근무했고, 매달 월급과 함께 받은, 회사 이름까지 기재돼 있는 급여명세서를 보관하고 있는 기간도 6년이나 되는데, 어떻게 두 달만 근무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그 후 고용노동청의 현장방문·퇴사 직원들의 증언·노조의 회사 앞 집회·선전전 등 많은 일들이 진행된 이후에야 사장의 자백과 퇴직금에 대한 지급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주노동자는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했고, 부친의 마지막 순간도 함께하지 못했다.

이처럼 진실을 무조건 부정하는 사례와 더불어 최근에는 백지 서류에 이주노동자의 서명을 먼저 받은 후 나중에 퇴직금 중간정산이 정상적으로 처리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하는 행위, 하루 12시간 근무 중 실제 휴게시간은 1시간에 불과한데도 휴게시간을 5시간으로 기재한 한글 근로계약서를 근거로 모든 임금을 다 지급했다고 주장하는 행위, 퇴직금을 현금으로 줬다고 하면서 수령증에 이주노동자의 서명을 강제로 받아 제출하는 행위 등 떳떳하게(?) 법을 위반하는 행위들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말도 되지 않는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그들이 이주노동자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국말도 서투르고 동료들의 보살핌을 받기도 어려운 데다 미등록 취업으로 인해 항시 단속과 강제추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보편적 권리로서의 노동과 노동의 대가를 정상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 정당성은 주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법 개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취업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법정 퇴직금을 대신해 사업주가 출국만기보험에 가입하게 돼 있는데, 이들의 불법체류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출국만기보험의 지급시기를 “출국한 때부터 14일 이내”로 변경한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이 의원입법의 형식으로 발의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이미 국회를 통과해 올해 1월28일 공포됐고,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인 이달 29일부터 시행된다.

개정법은 이주노동자가 출국 전에 보험금을 신청하면 출국 후 해외계좌 입금 등의 방식으로 해외에서 수령하는 방법과 공항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후 직접 현금으로 수령하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퇴직금을 받고 싶으면 무조건 출국을 하라는 의미다. 또한 사업장 변경의 경우에도 최종 사업장 퇴사시에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국만기보험은 법정 퇴직금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개정법은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과 금품청산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퇴직금에 '출국'이라는 조건을 부가시키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대한 재산권 침해행위이자 명백한 차별행위다.

출국만기보험의 경우 사업주가 납부하는 보험료는 고용노동부 고시 금액(통상임금의 8.3%)보다도 낮은 수준이 대부분이다. 출국만기보험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법정 퇴직금보다 적다고 봐야 한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이주노동자는 출국한 이후 또는 출국 당일 공항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이후에야 본인의 퇴직금이 적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법에 보장된 차액분의 청구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주단체들이 개정법에 대한 헌법소원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집회와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할 ‘법’이라는 것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언제쯤 외국인도 보편적 권리로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현실이 만들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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