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따르릉∼

4월 중순께 어떤 단체로부터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노동절을 앞두고 '올해 노동절에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원고청탁 전화였다. 전화를 건 상대방은 정권퇴진이나, 비정규직 문제나, 노동법적인 문제나 최근에 노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일 등을 소재로 삼았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딱히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승낙하고 말았지만, 노사관계전문지에서 일하다보니 노동절을 앞둔 시기가 가장 바쁜 때인지라 글을 시작하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올해 노동절에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나에게 올 노동절을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이 스스로에게 던져진 순간 글을 쓰는 것이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취재하면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20년째 레미콘 운전을 하다 '노동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처음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는 이순 레미콘노조 김영남씨는 "솔직히 말해 5월1일이 노동절인건 아는데, 의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영남씨는 법원에서 '노동자' 인정 판결을 했음에도 사용자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절을 '기념'하기에는 1886년 상황이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김영남씨는 "힘들지만 싸울 수 있는건 내 옆에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노동절 집회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보면 기운이 날 것 같습니다"고 말하며 노동절을 '충전'할 수 있는 날로 기대하고 있었다.

김영남씨뿐만 아니라 장애인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50%가 넘는 노동자들이 1886년 미국노동자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외침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21세기 첫 노동절에 '노동자'가 해야 할말은 너무 많았다.

지난 27일 구속되기 직전 만난 금융노조 김기준 위원장 직무대행은 "노동절이 사실은 축제가 돼야 하는데, 올해는 축제의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투쟁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한국노총은 금융노조 간부들의 대규모 구속사태 이후 실내에서 기념식을 하려던 노동절 행사를 옥외집회로 변경했다.

대부분 노조지도자들은 올 노동절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투쟁의 연장선에서 올해 노동절을 보고 있었으며, 이번 노동절 행사를 올해 투쟁의 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무금융노련 김형탁 위원장은 "민영화 등 구조조정 반대투쟁, 대우차 투쟁 등 노동자 분노는 넘치는데 조직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절 행사를 통해 노동자들의 분노를 조직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별노조를 출범시킨 후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금속노조 이승필 위원장도 산별노조 운영과 관련 9월말까지 잡힌 일정속에 노동절을 배치해놓고 있었다. 민주노총쪽은 지난 '4·10 폭력진압 사태'부터 '노동절축제'는 이미 한참 물건너간 이야기였다.

현장 노조간부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사업장의 상황에서 올해 노동절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칩팩코리아노조 허원 위원장은 여성조합원의 80% 이상이라며 최근 모성보호법안이 통과됐다면 더욱 뜻깊은 노동절이 됐을 거라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파견철폐'라는 글귀를 머리에 염색하고 다녀 유명세를 탄 방송사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은 올해 노동절이 노조를 만든 후 처음으로 맞게되는 노동절이라 더욱 남다르다. 6월말이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파견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날 것으로 보여 걱정이라는 주봉희 위원장은 비정규직노조 위원장답게 "올해 노동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자리에 모여 단결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번 노동절 기념대회 문화공연 연출을 맡아 더욱 분주한 춤패 '선언'의 박현욱씨는 "메이데이 111주년 기념식이라기보다 그 당시(1886년)의 싸움의 연장선에 있다는 마음입니다. 이번 메이데이에서 분위기를 몰아 노동자들의 총반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도시철도연맹 오창식 사무처장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했던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의 파업을 기념하기 위한 노동절인만큼 우리는 다시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다시 한 번 되돌아야봐야 한다"며 노동절의 근본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답했다. 오 사무처장은 "미국도 1930년대가 지나서야 8시간 노동제가 이뤄졌다"며 "지난해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다시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사무처장은 "어떤 사람들은 노동절이 단지 공휴일일 수도 있을테고, 어떤 사람들은 집회하는 날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노동절을 왜 기념하는 가를 생각해보는 날이 된다면 노동절은 의미있는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대우차 폭력진압 사태와 금융노조 간부 대규모 구속을 공안적 노동탄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를 노동절 주요기조로 잡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은 '김대중정권 퇴진'을 투쟁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노동절 선언문과 기자회견문 등을 통해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공기업 구조조정, 정리해고 중단 △공안적 노동탄압 중단, 구속노동자 석방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일방적 의료보험 인상 중단 △개혁입법, 모성보호법 처리 △공무원, 교수노조 인정 △공교육 활성화, 공공의료 확충 등이다.

111년전 '8시간 노동제'를 외쳤던 그 당시보다 경쟁과 경제적 효율성만이 강조되며 노동의 유연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의 요구사항은 더 복잡하고 다양해진 것 같기도 하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을 비춘다'는 석가탄신일이자 21세기 첫 노동절인 올해 5월1일. 노동하는 여러분에겐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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