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금속노조가 지난 4월 국회 정론관에서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노사지도지침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해 12월18일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지 7개월이 흘렀다. 통상임금 전쟁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대법원의 판결은 오히려 노동현장에서 도화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 더디고 불안한 올해 임금협상이 이를 방증한다.

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임금교섭 타결률은 10.7%로, 98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낮다.<표 참조> 반면에 노사분규 건수와 근로손실일수는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1월부터 6월18일까지 16건에 머물렀던 노사분규(근로손실일수 3만2천956일)가 올해 같은 기간에는 40건(근로손실일수 7만5천301일)으로 폭증했다. 예년 수준을 넘어선 노사분규 건수는 앞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매일노동뉴스>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노사 간 통상임금 협상을 살펴봤다.

통상임금 범위 넓히고, 연장근로 줄이고

 

대법원 판결 직후 일부 사업장에서 통상임금 협상을 타결했다는 소식이 잇따랐다. 무혈입성에 성공한 사업장들은 주로 퇴직자 일할지급 규정을 두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적거나 국내법 준수에 예민한 외투기업들이었다.

퇴직자 일할지급 규정을 두고 있던 절연코일을 생산하는 충북 음성의 S사는 올해 상반기 임금교섭을 통해 연 750%의 정기상여금과 직책수당·자격수당·출근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했다. 대신 3조3교대 근무체계를 4조2교대로 변경했다. 근무시간이 축소되면서 줄어든 임금은 올해 기본급 기준으로 11% 인상을 통해 일부 보전하기로 했다. 야간근로 할증률은 기존 50%에서 25% 증가한 75%를 적용한다. 다만 지난 3년치 소급분은 동종업체 소송 결과에 따르기로 했다.

골판지를 생산하는 대구의 아진피앤피도 600%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교대제를 3조2교대에서 4조3교대로 개편했다. 교대제 개편에 따라 16명을 신규채용하고, 임금보전을 위해 기본급을 16% 인상했다. 아진피앤피 역시 퇴직자 일할지급 규정이 있었다.

이들 사업장은 연장근로를 대폭 줄이거나 교대제를 개편하는 등 근무시간에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사용자들이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는 대신 초과근로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응한 결과다.

외투기업에서는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고 회사가 먼저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는 경향도 불거졌다.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한국호세코의 경우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마자 700%의 정기상여금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회사는 2011년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하자 하루 8시간씩 교대로 일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해 연장근로를 없앴다.

서울에 위치한 다국적 제약회사인 J기업은 지난해 12월19일부터 상여금 700% 중 설·추석에 지급하는 100%(각 50%)를 제외한 600%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회사 경영사정 탓에 정기상여금의 일부만 통상임금 범위에 반영하거나 단계적으로 반영하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동합금을 생산하는 P사는 정기상여금 600% 중 300%를 4월부터 소급해 통상임금에 산입하기로 했다. 나머지 300%는 노동시간단축 관련 법 시행시 임금보전을 감안해 2016년부터 통상임금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P사 노사는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는 대신 올해 임금인상을 동결했다.

정기상여금이 ‘근로자의 날 기념비’로 둔갑

같은 퇴직자 일할지급 규정을 두고 있지만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사업장도 눈에 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명칭을 '복리후생비'로 바꾸는 사업장들이 등장한 것이다. 알루미늄 전해콘덴서를 생산하는 경기도 성남시 S전자가 대표적이다. S전자는 기본급의 800%를 중도입사자나 퇴사자 모두에게 일할 정산해 왔다.

그런데 노사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정기상여금을 없애고 이를 모두 복리후생비로 전환했다. 이를테면 1월에 지급하던 상여금 100%를 1월28일 설날휴가비로 지급하는 식이다. 이렇게 2월은 체력단련비, 3월은 자기개발비, 5월은 근로자의 날 기념비, 7월은 하계휴가비, 8월은 추석휴가비, 9월은 건강관리비, 11월은 김장비로 명칭을 바꾸고 각 지급일자도 명시했다.

동시에 퇴직자 일할지급 규정은 재직자에 한해 지급하도록 바꿨다. 법원이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진 금품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을 비껴 가려는 편법으로 풀이된다.

노사가 합의해도 노노갈등 불씨 남아

경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는 최근 기업별노조인 발레오경주노조와 기존 700%의 정기상여금 중 500%를 성과연동형 상여금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200%는 명절상여금으로 바꾸는 임단협을 체결했다. 이에 반발한 조합원 100여명은 기업별노조를 탈퇴해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에 가입했다. 발레오경주노조 소속 일부 조합원들은 노사합의에 따라 삭감되는 통상임금을 돌려 달라는 내용의 임금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통상임금 협상은 노사는 물론 노노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강판 제조업체인 D제철은 퇴직자 일할지급 규정을 두고 있다.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적용하면 명절상여금 100%를 제외한 600%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그룹 차원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어 협상이 순조롭지 않은 실정이다. D제철노조 집행부는 정기상여금의 일부만 통상임금화하는 현실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법대로"를 요구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상당수 노조가 통상임금 협상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자칫하면 복수노조로 이어지는 길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때문에 통상임금은 빼고 나머지 쟁점만 놓고 올해 임금협상을 마무리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SK하이닉스 노사는 통상임금을 제외한 채 임금협상을 끝냈다. 노사는 800%의 정기상여금과 복지포인트 100만점·일부 고정적 수당의 통상임금화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법정소송에 맡기기로 했다.

'통상임금 최대 격전지' 현대차로 쏠리는 시선

통상임금 전쟁에서 최대 격전지로 불리는 완성차업계는 이제야 협상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달 3일 상견례를 한 현대자동차 노사는 한 달 만인 이달 3일 8차 교섭부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요구안을 구체적으로 심의하기 시작했다. 기아자동차 노사는 10일까지 8차례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통상임금 논의가 본격화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지엠 노사는 15차례 교섭을 열었지만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서는 양측이 원론적 입장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완성차 노조의 요구는 거의 동일하다.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기본급과 제 수당·상여금 등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통상임금 범위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건은 현대차다. 현대차 노사는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문제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현대차의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에는 기준기간 내 15일 이상 일해야 지급하는 동시에, 퇴직자에게는 근무일수에 따라 지급하게 돼 있다.

사측은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에 "기준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자에 대해서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근거로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퇴직자에 대한 일할지급' 규정을 근거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노사의 통상임금 협상은 자동차업계 대리전 양상을 띤다. 최근 현대차 계열사 21개 노조가 모여 '통상임금 정상화 쟁취 연대회의'를 출범시킨 배경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뿐만 아니라 부품업계도 현대차 협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종덕 금속노련 정책국장은 "자동차 부품업계는 올해 임금교섭이 특히 더딘 편"이라며 "노사 모두 현대차 교섭이 끝나기 전에는 타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업장의 결정을 관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통상임금을 제외하더라도 올해 현대차 교섭은 어느 해보다도 험난해 보인다. 사측이 "통상임금 범위 조정은 대표소송 결과에 따르면 된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다, 현대차지부도 "정기상여금과 제 수당은 통상임금"이라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년연장과 노동시간단축('8시간+9시간' 근무체계를 내년부터 '8시간+8시간' 근무체계로 조기전환) 이슈까지 결부되면서 노사 모두 셈법이 복잡해졌다.

본격적인 협상은 여름휴가가 끝난 직후부터로 예상된다. 이달 10일 쟁의조정을 신청한 금속노조는 22일 1차 총파업을 전개하고, 다음달 셋째 주쯤 총파업을 통해 통상임금 범위 확대를 관철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지부도 노조의 파업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교섭이 길어지면 법원 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현대차지부는 23명의 대표소송 형태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르면 9월께 1심 판결이 나온다. 지부 관계자는 "지금은 섣불리 결론을 예상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며 "노사 모두 서둘러 답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 김학태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