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최악의 살인기업에 현대제철과 대우건설이 선정됐다. 예상된 일이다. 현대제철과 대우건설은 죽음의 작업장이었다. 지난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만 10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졌다. 대우건설 공사현장에서도 1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대우건설은 지난 2011년에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살인기업 선정은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이 진행했다. 살인기업에는 주로 대기업 원청회사가 선정됐는데 올해 특별상의 주인공은 기업이 아니었다. ‘규제개혁위원회’가 특별상에 선정됐다. 규제개혁위원회는 1998년 4월에 설립된 대통령 직속기구다. 정부의 규제정책을 심의·조정하고, 규제의 심사·정비를 추진하기 위해 설립됐다. 규제개혁위는 모든 법률과 조례에 대한 개폐 의견 제출권을 가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 규제를 완화했는데 여기에는 각종 안전규제가 포함됐다. 안전규제가 풀리면서 산업재해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런 기조는 정부가 바뀌어도 지속됐다.

이명박 정부는‘기업 프렌들리’ 정책에 따라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선령 규제완화도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여객선의 선령규제(25년)를 30년으로 완화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2012년 일본에서 18년 운항하고 은퇴한 낡은 배를 들여와 증·개축까지 강행했다. 이처럼 세월호 비극은 돈 벌이에 혈안이 된 기업에 날개를 달아 준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에서 비롯됐다. 당시 규제개혁위원회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규제완화의 명분과 논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 정부 내에서 규제개혁위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경제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규제완화’를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는 암덩어리”라며 정부 부처를 채근했다. 모든 규제를 풀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술을 외우라고 강요했다. 규제완화는 곧 알라딘의 주전자였다. 덩달아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에 불과한 규제개혁위는 모든 부처를 호령하는 기관으로 군림했다. 규제완화 광풍이 몰려오나 싶더니만 대형 사건이 이를 멈춰세웠다. 바로 ‘세월호 참사’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장관급의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암덩어리를 없애겠다고 했던 박 대통령이 새 규제기관을 신설하겠다고 나선 모양새다. 규제는 완화하되 안전은 챙기겠다는 발상이다. 박 대통령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현재로선 우려스러운 시선이 많다.

최근 정부 내에서는 산업진흥과 안전규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대표적인 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다. 가스·원전 등 에너지부문의 안전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이 분야를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 노후화된 원전의 안전성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산업부는 산업진흥과 안전규제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전정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산업부 업무보고에서 “세월호 참사로 ‘안전’이 중시되고 있는 현 상황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산업부가 산업 재난·재해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산업부는 규제완화를, 국가안전처는 규제강화를 내세우면서 부처 간 엇박자를 빚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보다 사고 발생 후 대응력에만 정부 기능이 쏠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지적은 타당하다. 박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준 규제개혁위는 이런 식의 정부부처 간 역할 분담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위는 정부 내에서 초헌법적 기관이자 옥상옥으로 군림한다. 기업들은 각종 안전규제를 없애려고 규제개혁위로 찾아간다. 규제개혁위는 기업들의 로비 창구로 전락된 지 오래됐다. 규제개혁위는 기업에게 안전은 무시해도 된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공동캠페인단이 살인기업 특별상에 규제개혁위를 선정하면서 설명한 이유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은 불가능한 욕심이다. 살인기업 특별상에 규제개혁위가 선정된 이유부터 살펴 '사람 잡는' 규제개혁위의 전횡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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