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홍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지난해 10월 매일노동뉴스 기고를 통해 요양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열악한 노동환경·불안정한 고용형태·세금으로 운영되는 요양시설의 비리·부정에 대한 정부의 관리 소홀 등을 지적했다.

필자는 요양보호사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법률 상담을 전국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2년 가까이 해 왔다. 하지만 정작 요양노동자들의 업무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내용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기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요양병원에 한동안 머물 일이 있어 요양노동자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시간이 있었다.

요양노동자들은 특정 센터와 계약을 맺고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자택으로 찾아가 요양업무를 수행한다. 또는 요양병원 등을 비롯한 시설에 고용돼 해당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돌본다. 전자를 ‘재가’라 하고 후자를 ‘시설’이라 줄여 말한다. ‘재가’는 자택에서 요양을 받고자 하는 인원 변동이 수시로 발생하고, 한 명의 인원에 대해 이뤄지는 요양시간이 정해져 있다. 때문에 근무시간이 적다는 점이 주로 문제가 된다. ‘시설’의 경우에는 그 특성상 해당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위한 24시간 돌봄이 이뤄져야 한다. 때문에 교대·연장·야간근로로 인한 장시간 근로가 문제다.

요양병원에 있었으니 ‘시설’에 해당하는 경우를 직접 24시간 목도하게 된 셈이다. 직접 ‘하는 것’을 제외하고 ‘보는 것’에 따른 각인은 ‘듣는 것’보다 예리하게 이뤄졌다. 움직이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몸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대소변을 받고, 말동무를 한다. 손과 발이 돼 움직이는, 아니 움직일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을 봤다.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의 결합이 가져오는 그 무게감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양노동자들이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요양보호사라는 견고한 벽에 가려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상담을 하고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해당 노동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은 그가 모든 것을 훌훌 덜어 버린 후의 모습, 즉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 요양병원에서도 끝내 요양보호사 복장을 두른 모습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요양노동자들과 처음 상담·교육을 시작했던 2년 전, 상담과 교육의 주된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근로기준법과 관련한 것이었다. 주휴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등의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 2년이 지난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사이 요양노동자들의 수많은 목소리가 있었지만, 근로기준법의 최저 수준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노동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대부분 기간제 비정규직인 요양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계약을 만료하고 근로관계를 끝낸다. 아예 폐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요양’과 관련한 사업은 주로 우리가 세금으로 납부하는 장기요양보험료를 재원으로 해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이뤄진다. 센터와 시설은 모두 세금과 국가·지자체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그런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실시된 이후 지속적으로 센터와 시설 사용자가 위법행위로 지원금액을 과다 청구하는 행태가 문제로 지적된다.

요양보호사의 노동조건은 수년이 지나도록 열악한 상황 그대로다. 일부 사용자들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사회복지의 수행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세금으로 사욕을 채우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손을 놓고 있는 국가와 시설·센터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요양보호사가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요양보호사의 노동조건이 열악한 만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반영해 지난해 3월부터 월 최대 10만원까지 ‘처우개선비’를 지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영민한 센터와 시설이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시급을 낮추는 방식을 동원하는 데다, 정부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함으로써 그마저도 요양보호사를 위한 실질적인 처우개선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모두의 필요에 따라 출현했을지도 모를 요양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래서 돌봄노동자를 위해 이제 막 일어서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가 지역·시민단체와 연대해 힘들지만 많은 사업을 꾸려 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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