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공인노무사
(공공연맹 정책국장)

공공기관이란 공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기관을 말하지만, 좁게 분류하면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으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요건에 해당해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의료·교통·주택 등 사회 각 영역에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공공기관 304곳에 노동자 30만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런 공공기관, 특히 공기업은 이른바 ‘신의 직장’ 또는 ‘신이 감춰 둔 직장’ 따위로 불린다. 민간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좋은 복리후생·안정된 고용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이 됐다. 어느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네북이 돼 버렸다. MB 정권 시절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통해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단체협약 파기로 노동탄압에 내몰렸다. 이제는 비정상의 정상화란 명목으로 500조원이 넘는 공기업 부채의 주범으로, 많은 빚을 지고도 높은 복리후생을 누리는 방만경영의 주범으로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사회 각 영역에서 정부의 정책사업을 대신해서 시행한 결과다. 4대강 사업·보금자리 주택·세종시 건설·대기업에 대한 원가 이하의 전력 공급·해외 자원 개발·고속철도 건설사업 등 정부가 역점을 뒀던 사업을 공공기관들이 떠맡았기 때문이다.

이런 국책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역대 정권들은 자기 입장을 대변해 줄 낙하산 인사들을 공공기관에 내려보냈다. 이런 사업을 수행한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경영평가를 통해 높은 등급의 점수를 주고, 이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했다. 그리고 정부는 예산편성지침을 통해 공공기관 임금인상률부터 복리후생과 같은 모든 노동조건을 감독했다. 모든 것이 정부가 벌여 놓은 판이다. 물론 이 판 위에서 공공성 사수를 외치지 못하고 경제적 실리주의에 빠졌던 공공기관 노조의 책임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정책 실패를 거론하지 않은 채 마치 공공기관 부채의 근본원인이 공공기관 노동자의 과도한 임금과 복리후생에 있다고 진실을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단체협약으로 보장된 복리후생을 절감하고, 나아가 이와 전혀 관계없는 단체협약상 경영·인사 관련 조항의 폐지를 ‘정상화 대책’이란 이름으로 시행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과 노동관계법령이 규정하는 노사자율의 원칙이란 명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공공기관 노조와 노동자들이 단지 몇 푼의 복리후생비가 깎이는 것 자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올바른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올바른 개혁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공공기관의 예산권과 감독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정부가 사용자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공공기관 노조는 언제든지 공공기관 개혁에 앞장설 준비가 돼 있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현재 추진되는 복리후생비 절감액은 1천700억원 수준이다. 전체 공공기관 부채 523조원의 0.03% 정도다. 이를 계산해 보니, 복리후생비 절감액으로 모든 부채를 갚으려면 3천년 이상이 걸린다. 물론 자구노력을 보이라는 것이지, 이 정도로 모든 빚을 갚겠다는 생각으로 정부 정책담당자들이 해당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공공기관 노조와 노동자는 정부가 정상화 공세를 통해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공공기관 기능조정 및 민영화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9월3일 공공기관노조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우리는 다른 생각 없어요. 높은 데서 시켜서 그랬어요. 왜 우리한테만 그래요’라고 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혼자만의 환청일까.

정부는 어디 한번 공공기관 기능조정 및 민영화의 수순을 밟아 보라. 정부 정책을 대단하게 생각했던 국민은 그 실체가 드러난 뒤 엄청난 슬픔에 빠질 것이다.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의도가 무엇이든, 무엇을 시도하든 대화가 기본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정부는 자신들조차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없는 잘못된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노정 대화에 나서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