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국가는 당신을 국민이라고 부른다. 국민은 국가가 당신을 복종시켜 부르는 이름일 뿐이다. 국가의 재정은 납세의무로 당신의 재산을 빼앗고, 국가의 무력은 병역의무로 당신의 시간을 바쳐 국가를 세운다. 그러니 국가의 힘, 권력은 분명히 국민인 당신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는 국민 말고 당신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주권이란 말로 당신은 국가가 요구하는 대로 충성을 바친다. 적국이 당신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국가가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국가가 건축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당신을 국민으로 규정지은 것이다. 당신이 국민인 것을 의심하지 않고 복종한다면 당신은 없다. 그러나 2014년 오늘, 당신은 어떠한 의심도 없다. 세상은 당신의 침묵으로 평화롭다.

2.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의심해서는 안 되는 국민주권 선언이다. 국민인 당신과 국가 사이에서 국가의 최고권력 주권이 당신에게 있다고 진정으로는 누구도 그렇게 알지 않는다. 당신은 국가에 복종해야 하는 국민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알 뿐이다. 왜? 당신은 당신의 의지를 국가에 강제할 힘이 없다. 그러나 국가는 국가의 의지를 당신에게 강제할 힘이 있다. 당신은 국가를 굴복시켜 낼 수 없지만 국가는 당신을 굴복시킨다. 그 힘으로 국가와 당신은 다르다. 폭력이다. 국가는 세상의 폭력을 자신의 것으로 독점하고 서 있다. 국가의 무력, 국가에게서 폭력은 천부의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폭력을 잃고서 국가의 국민으로 서 있다. 폭력은 당신에게 천부의 것이었다. 그것을 국가가 독점했고 당신은 빼앗겼다. 납세의무·병역의무 등 국가가 당신에게 국민의 의무라고 강제할 수 있는 힘은 폭력에 있다. 법·법원·경찰·군대는 국가의 의지가 무엇인지 선언하고 그 의지를 강제집행 한다. 폭력은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는 힘이다. 우리가 살아온 근대는 폭력이 법에 의해서 행사된다는 것이 이전 시대와는 다를 뿐이다. 폭력은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폭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자력구제 등 사적 강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폭력을 차지하고서 이 세상에 국가는 탄생했다. 탄생 이후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기 위해 달려왔고, 결국 그것을 달성했다. 근대국가가 아니라도 국가는 언제나 폭력을 독점하고서야 온전히 국가일 수 있었다. 국민주권주의도 민주주의도 폭력이 국가의 힘이란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국민주권주의니 민주주의는 국가와 국민 사이를 규정짓는 말이 될 수 없다. 그저 국가의 의지를 정하는 국민들, 그리고 국민들 사이의 질서를 규정짓는 말이다.

3. 폭력은 평등을 모른다. 평등은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힘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다른 사람의 것과 조절되고 절충돼 사라질 수도 있는 관계이다. 국가에 대한 관계에서 국민인 당신은 평등을 말할 수 없다. 국가 대한민국과 당신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평등을 말하는 순간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그 순간, 그 무엇도 상위에 있지 않은 최고의, 결코 나뉠 수도 없는 불가분의, 어디에도 양도할 수 없는 불가양의 절대권력인 주권을 가져야 하는 국가가 아니다. 국민인 당신은 국가에서 평등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폭력을 양도하고서 당신은 국가로부터 국민으로서 국가 내에서 평등을 기본권으로 보장받았다. 그런데 폭력이 국가의 것이라고 해도 폭력은 국가와 당신과의 관계, 즉 국가부문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복종하는 관계에서는 폭력이 지배한다. 국가의 폭력을 통해서든 불법의 폭력을 통해서든 복종은 폭력에 의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게 복종이 이뤄지는 곳은 어디일까. 근로계약관계가 지배하는 사업장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오늘도 가장 많은 인민이 복종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흔들림 없이 복종하고 있다. 인민은 근로계약으로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돼서 사용자에 복종한다. 하지만 근로계약관계에서 사용자에게 폭력은 없다. 오늘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폭력이 복종의 힘이 아니다. 분명히 사용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사용종속관계를 실체로 한다는 근로계약관계인데도(대법원 2014.2.13. 선고 2011다78804 판결; 대법원 2009.4.23. 선고 2008도11087 판결 등) 사용자의 폭력은 복종의 힘이 아니다. 그래서 근로자는 노예와는 구별된다고 말한다. 근로계약관계가 지배하는 사업장에서 복종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다. 오늘 노동자는 복종의 정도로 평가한다면 노예보다 낮다고 할 수가 없다. 휴식을 제외한 나머지 자신의 생명을 근로계약관계의 이행을 위해 바친다. 보다 효율적인 이행을 위한 성실성에서는 노예보다도 높다고 할 수 있다. 노예에게 복종은 사용자의 폭력에 의해서 외적으로 강제된 반면 오늘 노동자에게 복종은 내적으로 수용돼 이뤄지고 있다. 그렇게 노동자는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복종은 나의 힘이다. 이런 노동자의 사용자에 대한 복종을 두고서 노예처럼 사슬과 채찍에 의한 폭력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임금 확보라는 생존수단을 통한 경제적 강제가 지배하는 근대의 생산양식이라고 말해 왔다. 이에 따른다면 폭력은 자본의 세상에서 행해지는 자본의 일반적인 지배기술이 아니다. 폭력이 아닌 경제적 강제로 자본의 (확대)재생산은 수행되고 있다고 한다. 효율성·합리성·생산성이 자본의 말이 됐다. 그에 대한 말이 국가의 것이 됐다. 그리고 계약에 의한 것이니 자유라고 말한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그 계약서에서 정한 바에 따라 사용자에 복종해 사용자를 위해 근로를 제공하는 것이니 자유의 세상이라고 말한다. 사슬과 채찍이 없으니 근로를 자유라고 말한다. 근로는 분명히 사용종속관계, 즉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그를 위해 일하는 복종의 행위임에도 자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을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사업장에서 하는 근로 제공은 자유가 박탈된 노동의 수행이지 자유는 아니다. 복종은 자유가 아니다. 고대의 농장이든 근대의 공장이든 그곳이 어디라도 자유가 아니다. 자유의 박탈이다. 근대의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폭력은 없다. 그런데도 노동자는 근로계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복종한다. 자유의 박탈을 계약으로 체결하고서 복종한다. 여기서 폭력은 찾아볼 수 없다.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폭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경제적 강제가 작동하는 자본의 세상이라서 폭력이 없어도 세상은 재생산되는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이 경제적 강제로 작동하는 세상의 힘의 원천은 폭력이다. 계약의 이행은 결국 법·법원·경찰·군대의 질서에 의해서 강제된다. 계약의 의무자가 이행할 때는 국가의 폭력이 사용될 필요가 없다. 이행하지 않을 때 국가의 폭력이 의무자에게 법의 이름으로 강제된다. 그것이 굳이 근로계약에 따른 근로의 제공을 강제하는 것일 필요도 없다. 노동자가 생존하기 위해 의식주 등 생존수단을 사용자 아닌 자로부터 차용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강제라도 근로계약에 따른 복종을 강제하는데 충분하다. 복종은 여전히 폭력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의 일이다. 계약 체결만으로는 의무자를 복종시켜 낼 힘이 없다. 폭력에 의한 강제로 계약은 이 세상의 질서가 되고 있다. 경제적 강제로 자본은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의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4. 사용자는 당신을 근로자라고 부른다. 근로자는 사용자가 당신을 복종시켜 부르는 이름이다. 사용자는 근로계약으로 당신의 시간을 차지하고서 당신의 노동으로 자본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니 자본의 힘은 분명히 당신으로부터 나온다. 사용자는 인민으로서 당신의 기본권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근로자로서 당신에 관심이 있다. 이 세상에서 계약은 자유이다. 이 근대의 세상은 계약의 자유를 선언하고서 서 있다. 사실 당신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사용자에게 복종하든 아니든 이 세상은 당신의 계약에 관심이 없다. 당신이 그 계약으로 당신의 자유가 박탈되더라도 관심이 없다. 그것은 당신의 자유라고 그것이 당신의 기본권이라고 헌법은 선언하고 있을 뿐이다. 법이 국가가 무심하다고 당신이 원망해도 소용이 없다. 당신의 원망에 당신이 근로계약으로 박탈된 자유를 회복시켜 줄 당신의 국가는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통곡만 할 일도 아니다. 당신이 복종하든, 당신이 주인이 되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자유가 당신의 것이라고 이 세상의 법은 선언하고 있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동일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기 위해서 나서는 것까지 국가의 힘, 폭력이 방해하기는 어렵다. 결국 당신의 침묵이야 말로 당신의 자유를 빼앗는 계약을 받드는 힘이다. 복종은 폭력의 힘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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