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45일간의 농성파업이 끝났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달 28일 열사대책·폐업센터 고용·노조활동 보장·임금합의서와 센터별 단체협약 기준이 되는 ‘기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노조 설립 350일 만의 일이다.

그동안 두 명의 노조간부가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회장·수석부지회장이 열사투쟁 과정에서 구속됐으며, 조합원 상당수가 극심한 생계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겨울과 올해 여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100일 가까운 노숙농성도 진행했다. 76년의 삼성 무노조 정책을 깨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1천여명의 조합원들이 놀라운 단결력으로 결국 해냈다.

100% 만족스러운 합의는 아니지만 이제부터 삼성전자서비스에서는 놀라운 변화들이 발생할 것이다. 72개 조항으로 된 단체협약과 삼성 본사를 상대로 승리한 노조의 힘을 통해 사장과 관리자들의 반인권적 노동통제를 규제할 것이고, 탈법적으로 이뤄진 시간외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연차수당 미지급 관행을 없앨 것이며, 적정 휴게시간과 노동안전 조치도 보장받을 것이다.

건당 수수료제는 이번에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본급 제도를 도입하고 기준 건수와 건당 평균 수수료를 명시함으로서 급여의 투명성과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기본 틀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지회 조합원 대다수는 급여명세서 내역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매년 진행되는 임금교섭을 통해 기본급 비중을 높이고, 변동급인 건당 수수료 내역을 검증한다면, 노조가 요구했던 월급제로 점차 이행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회의 이번 승리는 단지 조합원들만이 아니라 수리업에 종사하는 14만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LG전자의 AS부문이나 동부대우전자서비스·동양매직서비스 등 AS업계 대부분의 상황이 고용형태나 임금형태가 삼성전자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이 하면 표준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반대로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 역시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만들어지고 나서 동종업계 사업주들이 노조를 방지할 목적으로 선심성 처우개선을 많이 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일이다. 수리업종의 노동자들 다수가 이러한 효과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조가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회의 이번 투쟁은 삼성에 대한 사회적 규제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큰 메시지를 던졌다. 여러 차례 노조설립 시도가 있었지만 삼성에서 대규모로 노조가 조직되고 단체협약까지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자신이 법적 사용자도 아니고 협약에 사인도 하지 않았으니 노조와 무관하다고 발뺌하려 하겠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언론에 해결을 공표하고, 삼성전자서비스가 체결 당일 성명을 발표한 것으로도 삼성 스스로 이를 인정한 꼴이다. 어쨌거나 이번 투쟁을 통해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물리적 ‘실체’로 분명하게 드러났고, 시민들 다수가 이를 확인했다. 헌법 위에 존재하는 삼성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한국 사회 노동권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삼성그룹 76개사의 종사자 26만명, 그룹 내 간접고용 노동자 8만명, 그룹의 1차 벤더 기업 종사자 60만명, 도합 100만명의 노동자가 무노조 정책의 직접적 영향권 안에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간접적 영향권까지 고려하면 노동권 피해는 더 심각해진다. 사실상 삼성의 기준이 모든 걸 규제하는 전자산업(삼성전자)·호텔숙박업(신라호텔) 등 십수 개의 산업에서 무노조 정책이 일반화되기 때문이다.

지회는 삼성의 무노조 정책을 제대로 폭로하고 삼성을 상대로 끝까지 싸워 노조 인정을 받아 냄으로써 삼성이 더 이상 초헌법적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지회는 삼성의 노무관리를 받는 100만 노동자와 산업 내에서 간접적 영향을 받는 수백만 노동자에게, 그리고 한국의 시민들에게 삼성에서도 노조를 할 수 있고, 또 노조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지회 조합원들은 이제 현장으로 복귀해 단체협약을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고,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센터들을 조직할 것이다. 임금체계를 좀 더 개선하기 위한 현실적 프로세스와 원청인 삼성과의 교섭을 좀 더 원활하고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체계, 임원과 조합원들의 민주적 소통을 위한 일상 사업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바라는 한국의 모든 시민들과 삼성의 무노조 정책에 희생당한 100만 노동자가 지회를 지켜보고 있고 응원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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