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필)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3구합2884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Ⅰ. 사실관계 및 사건경과


서울도시철도공사에 1995년 5월 입사해 전자직으로 근무하다가 2006년 6월부터 기관사로 근무했던 망인은 2012년 3월12일 오전 7시55분 업무교대를 마친 후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 차량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했다. 유족은 “망인은 사망 전 2011년 5월25일과 2012년 2월15일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바 있으며, 공사의 통제적 노무관리 수단으로 수동운전이 강제됐던 상태에서 승강장 고속진입·정위치 정차 등의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했다”며 “사고 당시 열차운전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급격히 증가됐던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망인은 더 이상 열차운전이 어렵다고 판단해 기관사 업무가 아닌 타 직종으로 전직을 신청했으나 2012년 2월29일 공사는 전직신청을 거부했다”며 “사고 발생 3일 동안 연속으로 열차운전을 수행했던 망인은 열차운전에 따른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로 정신과적 치료를 받던 상태에서 열차운전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적·정서적 이상상태에서 자살했다”고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2년 7월 “망인의 업무내용과 환경이 사업장의 승무직원이 통상 겪는 것 이상이라고 볼만한 특별한 사항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망인이 2012년 2월 전직에 탈락하기는 했으나 심사가 공개적으로 시행됐고 망인만이 탈락한 것도 아니다”며 “망인의 공황장애 진단은 망인의 사후인 2012년 3월16일자에 처음으로 진단돼 나타난다”는 이유로 ‘부지급’ 처분을 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는 2012년 10월 “망인이 보였던 증상이 일반적인 공황장애의 진단 기준에 미흡하고 망인이 일부 업무상 운전에 대한 부담감으로 불안 증상을 보이기는 했으나 이러한 증상도 환경적 요인과 체질적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어서 업무상 사유만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망인의 사망 직전의 상황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봐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 상황이었다고 보기 미흡하다”는 이유로 재심사 청구를 기각했다.

Ⅱ. 행정법원의 판결의 의미

1. 기관사의 직업성 정신질환과 업무관련성 요인

법원은 “망인이 열차를 운행했던 도시철도는 전 구간이 지하화돼 있어 열차 운행 중 햇빛을 전혀 볼 수 없고, 분진의 농도가 높은데 운전실의 환기가 쉽지 않고, 9조5교대로 운영돼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이라는 점 등 열악한 근무환경은 의학적으로 정신질환의 발병 또는 악화에 일부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의학적 소견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법원이 의뢰한 전문의 소견은 “망인은 진료 당시 반복되는 발작적인 생리적 불안증상과 함께 추가발작에 대한 예기불안 및 그의 결과에 대한 걱정을 동반했음. 망인은 공황발작 및 동반된 불안과 신체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보이며, 불안장애 진단 범주에 해당됐다고 판단됨.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일종임. 또한 망인이 호소했던 불안발작에는 주로 열차운전과 같은 근무환경이 촉매로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되는 바, 업무상 스트레스가 망인이 겪은 불안의 발병 또는 악화 요인으로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됨”이라며 기관사의 직무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의 유발 또는 악화의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인정했다.

2. 기관사의 직업성 정신질환 악화와 자살 사이 상당인과관계

법원은 “망인은 기관사 업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직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사실이 있는 바, 전직에서 탈락했을 때 입게 되는 충격과 절망감은 개인에 따라 편차가 클 수 있음. 그러나 망인은 특히 근무환경과 관련해 불안 반응을 호소했던 바, 망인의 전직의 탈락은 망인의 상병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일부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즉 근로복지공단·산재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서 재해발생 직전 ‘전직신청 거부’를 한 사실에 대해 법원은 망인의 직업성 정신질환의 악화 요인이라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3. 근로복지공단의 자살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의 문제점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자살에 대한 업무상재해 인정 기준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사례다. 지난해 12월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연구센터가 발간한 <업무상 정신질환 요양결정 사례 분석> 연구보고서는 이 사건을 분석하며 “2006년 6월 승무직으로 전직한 후 폐쇄 장소에 대한 회피·답답증·불안감이 지속되는 등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2012년 초 전직을 신청했으나 탈락하자 정신적인 충격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했는데, 자살 이전 진료 기록에는 공황장애 진단이 없고, 객관적 증거도 부족했으며, 공황장애 진단이 자살 이후 추가된 경우는 그 증상이 불분명해 업무와 사망 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연구보고서의 결론 및 제언에서 “특히 자살과 업무 관련성 판단시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겠다. 물론 유족의 입장에서는 자살의 경우 소송 등 여러 절차를 통해서라도 산재인정 여부를 재확인하고 싶겠지만, 자살은 우리나라의 사망원인 순위에서도 점차 높아지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살에 대한 산재인정이 비교적 덜 까다로우면 역으로 자살 가능성을 높일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즉 상당히 협소한 판단을 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근로복지공단의 판단 기준은 대법원(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에서 “인과관계 유무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로서 판단돼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인해 사망한 경우 근로자가 업무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해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기준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재차 확인한 사건이다.

Ⅲ. 맺음말

지난 3년 사이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3명의 기관사가 직무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질환으로 자살했다. 이 사건 외 지난해 1월19일 기관사의 자살 사건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고, 같은해 10월18일 기관사의 자살 사건은 부지급 처분되어 행정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 밖에 올해 6월 기관사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공황장애·적응장애 등 직업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3명에 대한 요양신청이 제기된 상태다. 이 사건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이 대법원 판결로 제시한 업무상재해 인정기준을 협소하게 판단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산재보험연구원은 연구보고서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은 즉시 수정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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