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법률원)

근로자가 사용자로부터 근로기준법에 따른 금품을 청산받기 위해서는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함과 동시에 그 의무 이행을 해태하는 경우 벌칙을 부과하고 있다. 사용자의 임금체불이 존재하는 경우 검찰은 근로기준법 위반죄를 적용해 기소하게 된다.

그런데 임금체불을 당한 근로자는 노동사건에 관한 특별사법경찰관인 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에게 진정을 제기해 체불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근로감독관은 노동사건에 관해 일차적 분쟁해결의 담당자가 된다. 근로감독관의 공정한 법집행은 근로자의 권익 실현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에 따라 국가는 근로감독관의 공정한 집무집행을 위해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을 제정해 근로감독의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해당 규정은 △감독관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투철한 국가관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감독관은 직무수행과 관련한 법령을 숙지해 감독관으로서의 자질을 구비해야 한다 △감독관은 민원인을 친절히 대하고 근로조건의 실태를 파악해 근로자의 권리구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감독관은 노사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도록 엄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명정대하게 직무에 임해야 한다 △감독관은 업무시간은 물론 업무시간 외에도 상급자와의 보고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근로감독관의 집무자세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또한 처음으로 근로감독관에 임명되는 사람은 모두 고용노동부 본부의 담당 정책관 또는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장에게 집무자세를 포함한 ‘근로감독관 선서’를 하게 돼 있다.

지금부터 필자는 한 근로감독관의 업무집행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기술하려 한다. 독자들은 아래에 기술되는 근로감독관의 업무집행이 근로감독관 집무자세에 비춰 합당한지 상식에 기초해 판단해 줬으면 한다.

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근로자 여러 명은 최근 노동청에 임금체불을 이유로 진정을 제기했다. 사건을 담당한 근로감독관은 근로자와 사용자를 출석하게 해서 진정요지를 간단히 조사했다. 이때 근로자측은 임금체불액을 산정하기 위한 기초정보를 근로감독관에게 서면으로 진술했고, 사용자측은 처음부터 구체적인 체불금품액수를 산정해 근로감독관에게 제출했다.

사건의 주된 다툼이 임금체불이라는 것을 노사 모두 인정했다. 다만 근로자측이 가령 100만원 체불됐다고 주장한 반면 사용자측은 체불금품은 100만원보다 훨씬 적은 20여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집주인은 100만원을 도난당했다고 주장하고, 도둑은 20만원밖에 훔치지 않았다는 주장과 흡사하다. 절도죄나 근로기준법 위반죄는 모두 국가 공권력에 의해 처벌받는 행위다.

노사 양측의 주장을 들은 근로감독관은 노사 간의 주장이 다르므로 2주 후에 다시 출석해 대질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근로자측이 대질조사를 하겠다는 날짜에 사정이 있어 출석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전화로 부탁했음에도 근로감독관은 당일 근로자측이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내사종결’을 해 버렸다. 사실상 '내가 나오라는 날짜에 나오지 않은' 근로자에게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다.

근로자가 임금이 체불됐다며 국가기관에 구조를 요청하고, 사건을 담당한 근로감독관은 임금체불의 액수에 관한 다툼이 있을 뿐 임금체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근로감독관은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내사종결을 하고, 다시 돈을 받고 싶으면 재차 진정을 제기하라고 친절하게 통보까지 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일처리 방식은 조선시대 고을 원님의 일처리 방식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이번 사례와 같이 우리 시대 근로자들이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법 이전에 고을 원님에 대한 존경심과 시키면 시키는 대로 반드시 해야 한다는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동헌 맨 위에 앉아 계신 근로감독관을 대면하시라고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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