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용
변호사
(법률사무소 가람)

대상판결 / 대법원 2012다45603 국가배상

1. 이 사건의 개요 및 1심 판결에서 원고들의 승소


원고들은 인천 소재 동일방직 주식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노조 간부 및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1978년 4월1일 모두 강제 해고당한 자들이다. 이로 인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고, 2010년 6월3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국가에 의한 피해자로 인정받은 자들이다. 같은해 12월 국가를 상대로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기본권(단결권) 및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받은 것을 이유로 국가배상을 청구했고, 2011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판결에서 승소했다.

1심 판결 내용을 기초로 이 사건의 개요를 보면, 피고(대한민국) 산하 중앙정보부는 동일방직노조의 와해 및 활동 방해를 위해 동일방직에 적극 개입해 원고들을 비롯한 조합원들을 해고하도록 했다. 동일방직노조 대의원 선거일인 1978년 2월23일 동일방직노조 이총각 집행부의 반대파 조합원들은 중앙정보부의 지시 아래 투표하러 나온 이총각 집행부 조합원들에게 똥물을 투척해 선거를 무산시켰다. 이에 이총각 집행부 조합원들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또 동일방직은 애초에 ‘복직 보장과 구속자 석방’이라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농성을 벌인 조합원들에 대해 회사 복귀를 결정하고 그 복귀 시한까지 정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 경기도지부 지시에 따라 1978년 4월1일 동일방직노조 조합원 124명을 해고했다. 노조는 반대파 조합원들이 장악하게 됨으로써 기존의 이총각 집행부는 와해됐다. 원고들은 이때 해고된 조합원들 중 일부다.

이후 해고된 동일방직노조 조합원 124명의 명단이 1978년 4월10일자 공문에 첨부돼 전국섬유노조 부산지부장 김영태 이름으로 전국 사업장에 배포됐다. 당시 피고(대한민국)는 노조 정화정책의 일환으로 1980년부터 1988년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로 확대·개편)·노동부·치안본부(경찰) 등 국가기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동일방직 해고자 명단을 포함한 해고노동자들의 명단을 취합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관리함으로써 원고들을 포함한 해고노동자들의 재취업을 사실상 봉쇄하는 노동운동의 통제수단으로 널리 활용했다.

그러고 나서 2000년대에 들어와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관련자들의 진술과 각종 자료를 수집·조사한 뒤 2010년 6월30일 이 사건에 관해 ‘진실규명’으로 결정하면서 “국가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신청인과 관련 노조 및 조합원들의 노동기본권, 조합원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해 신청인 등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이 사건 신청인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1심 법원은 피고(대한민국)가 그 산하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노동부·치안본부(경찰) 등을 통해 동일방직에 적극 개입, 동일방직 노조의 와해를 목적으로 원고들을 모두 해고되도록 하고, 1980년 이후로 상당 기간 동안 원고들이 포함된 해고노동자들의 명단인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관리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재취업을 어렵게 했다고 봤다. 이러한 피고의 일련의 행위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면서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2. 민주화보상법과 항소심의 원고패소 판결

그런데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2012년 5월 원고들에 대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한다는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그 요지는 원고들이 2000년대에 들어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에 의한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았고 당시 그 지급결정에 동의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이 동의에 대해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볼 것이므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것이었다.

3. 원고들의 상고와 대법원의 기각 판결

이에 대한 원고들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은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지난 3월13일 판결에서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했다. 특히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입법 목적이 신청인이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한 경우 재판상 화해의 효력, 즉 기판력을 부여함으로써 소송에 앞서 보상금 등 지급을 신속히 종결·이행시키고 보상금 등 지급 결정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데 있다고 하고 더구나 신청인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면서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했다.(일부 원고들에 대해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한 것은 큰 의미가 없으므로 생략했다.)

4.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과 헌법소원심판 청구

그러나 이 같은 대법원 판결(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판결 포함)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심히 부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재판상 화해 간주 규정은 이 사건 국가배상청구에 그 효력이 미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2000년 1월 제정된 민주화보상법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희생된 자와 그 유족에 대해 국가가 명예회복 및 보상을 행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하기(제1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이에 반해 이 사건은 원고들이 2010년 6월30일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로 인정받고 나서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기본권(단결권) 및 직업선택의 자유(근로의 자유)를 침해받은 것을 이유로 국가배상청구를 한 것으로서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고들은 1978년 4월 동일방직에서 민주노조운동을 이유로 해직(해고)된 자로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아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일정 금원을 ‘생활지원금’으로 지급받았다. ‘생활지원금’의 경우 민주화보상법의 필수지급항목인 보상금·의료지원금과는 달리, 생활대책으로서 민주화운동관련자 중 현재 생계가 궁핍한 자에 대해서는 일정한 경우 생활보조의 일환으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제9조 제1항)에 따라 지급한 것이다. 그 재원도 전액 국가예산이 아닌 관련자의 지원을 위해 기부된 성금으로도 가능한(제9조 제2항) 것으로서, 일정한 소득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생활지원금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을 두기까지 했다. 이로 볼 때, ‘생활지원금’의 성격은 국가가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된 사람 중에서 생활이 궁핍한 사람에 대해 그 생활을 보조하기 위해 지원한 지원금이지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보상이나 배상이라 할 수 없다. 특별희생에 대한 일실이익 등의 보상이 아니라, 민주화운동기여자에 대한 배려 내지 지원책이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들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화보상법에 의하면 원고들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이라고 돼 있는데, 원고들의 민주화운동은 1978년 4월1일 동일방직에서 ‘해고’된 것을 말하고, 그로 인한 피해는 해고된 사실로 인한 피해만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이후 국가기관에 의해 작성되고 관리된 블랙리스트에 의해 원고들의 헌법상 권리인 직업선택의 자유 및 근로의 자유가 침해돼 피해를 입은 것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인정된 민주화운동관련자가 원고들이 민주화과정에서 해고됐다는 것만 의미할 뿐, 국가 공권력이 원고들의 부당해고에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사실이나 국가기관의 블랙리스트 작성·배포에 관한 사항은 아예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음에도 대법원은 더 이상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이 사건 원고들은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대해 상고심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체청신청을 했는데 대법원은 기각했다. 이에 다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거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상태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 동일방직노조 해고노동자들의 국가배상청구는 원고들이 지금부터 36년 전인 1978년 4월 국가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의해 불법적으로 해고되고 이후 1988년경까지 10여년간 블랙리스트라는 이름하에 취업을 방해받고 생존을 위협당했던, 그리고 그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은 데 대해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위로를 받기 위한 몸부림이다. 국가는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원고들의 상처를 위로해 줄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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