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며칠 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식지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가 삼성전자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장단회의에서 그렇게 이야기됐다고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원래 1998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삼성전자가 AS(애프터서비스) 업무도 총괄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그룹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분사화를 추진하던 99년 만들어졌다.

삼성전자는 AS에 각별한 신경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90년대 초반 삼성전자가 금성사(현 LG)에 맞서 확고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들고나온 것이 AS의 대대적 강화였기 때문이다.

삼성은 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 불리는 신경영 선포 다음해인 94년 한국에서는 고객 신권리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AS 투자에 나섰다. 무상보증을 2년으로 연장하고, AS에 불만이 있으면 6개월 안에 교환을 해 준다는 것이 요지다. ‘찾아가는 서비스’를 내걸고 삼성전자는 서비스부문 비용을 두 배 가까이 늘렸다. 현재와 같은 방문수리제도가 이때 자리를 잡았다. 삼성전자가 이렇게 투자를 하자 경쟁사인 금성사는 홈닥터제, 대우전자는 24시간 서비스를 내걸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AS 기사들은 당시 최고의 숙련공 대우를 받았다. 삼성전자 제품들은 선진국 전자제품과 비교해 기술격차가 컸고, 제품의 완성도도 떨어졌기 때문에 고장이 잦았다. AS 기사가 노하우가 있어야만 고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삼성에 직접고용된 기사도 있었고, 대리점 형식으로 지금의 도급센터와 같은 곳에 간접고용된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고용·간접고용 관련해서는 쟁점이 형성되지 않았다. 대리점에서 일하더라도 임금수준이 낮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AS를 해 온 숙련된 기사는 좀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대리점을 선호했다.

이런 상황은 98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했다. 삼성전자가 구조조정 목적으로 AS사업부를 법인으로 분리시키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도급시스템에 변형을 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는 퇴직한 임원들에게 센터를 퇴직금조로 내주고, 도급센터들을 중심으로 이전 대리점들을 통폐합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센터 관리자는 도급센터 사장의 후배 또는 부하였던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급센터 사장들과 삼성전자서비스 간에는 은밀한 담합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센터 사장들은 수수료제로 운영되는 도급구조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챙겼다. 예전 대리점에서 발생하던 이익을 모두 쓸어 담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AS 기사들의 조건은 사장 몫이 느는 만큼 예전보다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외환위기 이후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기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아졌다. 기사들의 급여 하방 압력이 세진 것이다. 그래도 국내 시장의 경쟁력 부분에서 AS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에 기사들은 예전보다 나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수준은 됐다.

최악의 상황은 2012년 4월 이후 발생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소송 판결을 보면서 자신들도 불법파견 여지가 있다고 보고 기사 급여체계를 대대적으로 손본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도급센터 기사들에게 직접비·간접비·사회보장료 등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지급하던 수수료를 통합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30여개에 달하는 간접비와 기사 몫 수수료를 섞었고,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센터 사장들은 복잡하고 공개되지 않는 수수료 체계를 이용해 마음대로 기사 임금에 손을 댈 수 있게 됐다.

AS 기사들에게는 재앙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자기가 어떤 일을 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해졌고, 자신의 급여가 어떻게 책정되는지도 알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도급센터 사장들은 자기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통합수수료 내의 각종 간접비를 유용하는 방법을 개발해 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이 같은 전 과정을 묵인 또는 공모했다. 일부 센터에서는 아예 전혀 다른 급여명세서 3종을 만들었다. 하나는 삼성전자서비스에 제출하고, 하나는 세무소에 제출하고, 다른 하나는 기사에게 주는 황당한 일을 거침없이 저질렀다.

지금도 삼성전자서비스는 실제 급여(직접 수수료와 기사 몫 간접비)가 현장에서 어떻게 주어지는지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7만원짜리 급여명세서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자신들이 1천만원에 가까운 기사 몫 수수료를 지급해도 실제 수령액은 200만원도 안 되는 상황이 왜 발생하는지 삼성전자서비스는 알지 못한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 관리자의 꿈이 도급센터 사장이 되는 것이라고 하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서비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성전자서비스 급여체계의 핵심 문제는 건당 수수료만으로 급여가 구성돼 급여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삼성전자서비스-현장 AS 기사'의 수수료 지급체계가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즉 급여가 구성되는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체계를 만들어도 사장이 중간에 빼먹거나,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를 흔들 목적으로 장난을 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삼성전자로 통합돼 이러한 담합구조를 제거할 수 있다면 노조로서는 좀 더 투명한 급여체계를 만들 기회를 잡게 된다. 급여체계 설계보다 삼성전자 또는 삼성전자서비스와의 포괄적 교섭 또는 투명한 협의가 중요한 이유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서울 서초구 삼성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농성 파업이 많이 길어질 것 같지는 않다. 삼성도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론에 개의치 않는 삼성이라지만 지금은 경영권 승계 이슈로 사회 분위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삼성은 더 질질 끌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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