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노동자소유제도인 우리사주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 공약사항이기 하고, 이미 노사정 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항이기도 하다. 노동계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사주제도를 경영전략 수단으로 보아 반대하거나, 복지향상 차원에서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데이콤이나 현대자동차, LG화재 등 일부 노조에서는 우리사주제도를 활용하여 경영참여를 시도했으며, 한전기술 등 일부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는 노동자들이 회사의 주식을 인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부도난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자소유기업 형태로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소유제도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주인의식을 높여 생산성을 제고하고 노동과정 상의 비효율을 제거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회사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노동자들이 높은 지분율을 유지한다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그 회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어 외부투자를 유도하는 효과도 갖고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이나 퇴직금 외에 부가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으며,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노사분쟁을 줄여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국가 신용도를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들은 노동자소유제도가 제대로 작동했을 경우에만 현실화될 수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 중 어느 하나가 노동자소유제도 도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실효성 있는 제도를 도입할 수 없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가 없다면 노동자소유제도의 확대를 기대할 수 없다. 사용자만을 위하거나, 노동자만을 위하거나, 아니면 정부의 정책적 입장만을 고집하고 도입한다면 실효성 없는 법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재경부의 '우리사주제도 개정' 방향에는 우려가 앞선다. 재경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방향은 미국의 노동자소유제도의 일종인 ESOP 제도와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사주제도를 개편하고, 퇴직금의 '기업연금화'와 '자사주 구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재경부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도입하려고 하는 것은 노동자소유제도를 증시부양 정책의 하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퇴직금을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노동계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으로 제도를 개정하여도 우리사주제도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우리사주 구입에 극단적으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강조하였듯이 노동자소유제도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합의하고 정부가 이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을 때, 결실을 볼 수 있다.

재경부가 '퇴직금의 전용'을 들고 나온 것은 미국의 ESOP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ESOP제도는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ERISA)에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노사합의에 따라 ESOP 또는 401(k)제도를 기업연금과 통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고 있다. ESOP나 401(k)제도를 통해 소유하게 된 주식을 퇴직시에 현금화한다면 퇴직금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ESOP나 401(k)가 기업연금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업연금을 ESOP나 401(k)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 사용하지도 않는다. 노동자소유제도는 기업연금과 별개로 도입하되 노사합의에 따라 그것을 통합하여 하나의 기금으로 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재경부에서 도입하고자 하는 방식은 ESOP 제도로 현혹하여 증시부양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 증시를 부양할 수 있는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재경부가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제도에도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차입 ESOP제도 메커니즘을 도입하여 노동자들이 대주주가 될 경우 과감한 세제혜택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차입 ESOP는 ESOP신탁이 회사의 신용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주식인수 자금을 차입하고, 회사의 출연금으로 상환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주식을 분배하는 제도이다. 즉, 민영화나 분사, 부도에 직면한 기업의 노동자들이 주식을 인수할 경우 대출해주는 금융기관과 회사, 노동자들에게 많은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차입 ESOP 제도를 그대로 도입할 경우, 적용할 수 있는 기업이 민영화나 분사업체에 한정된다. 부채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민영화나 분사업체는 주식인수 방식에 의해 정부의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IMF 이후에 노동자인수가 많이 진행되었던 업체들은 부도나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들이다. 주식인수의 경우 엄청난 부채를 그대로 떠 안아야 하기 때문에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자산인수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노동자인수를 일반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차입ESOP 도입으로 노동자들이 대주주가 되는 회사만이 아니라 이미 노동자들이 대주주인 회사에서 자금을 차입할 경우에도 세제·금융상의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사주제도의 활성화는 자동적으로 증시부양 효과를 갖고 있다. 재경부는 증시부양에만 경도되어 노동자소유제도가 갖고 있는 많은 장점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장점들이 무시되었을 때, 오히려 우리사주제도의 활성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재경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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