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남 기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최근 논란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취약성이 엿보인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 재가를 21일 귀국 이후 검토하기로 했다. 21일 이후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한다는 것이 아니라 제출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계산해 보겠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청와대가 원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문창극 방패막이에 열심이던 새누리당도 점점 그를 버리는 쪽으로 마음을 모아 가고 있다. 당권 도전에 나선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물론 다수의 여당 의원들이 문 후보에게 자진사퇴를 공개적으로 종용하고 있다.

문 후보는 일단 버티기에 들어갔다. 19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문 후보는 "어제 말한 것처럼 오늘 하루도 제 일을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밤에는 "대통령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제 일을 준비하겠다"는 말로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이 가장 갑갑한 것은 아마 박 대통령일 것이다. 21일 귀국 이전에 문 후보자가 사퇴하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청문회를 하겠다고 버틸 경우 임명동의안을 제출하기도 마땅찮은 상황이다. 지명철회가 있지만 그러면 청와대의 인사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다. 자존심이 센 박 대통령의 스타일은 아니다. 이래저래 모양새를 구기게 됐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축으로 하는 박근혜 정권의 허술함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일개 보수언론인이었던 문창극을 하루아침에 국무총리 후보자 자리에 올려놓은 배경에 김 실장을 포함한 7인회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기춘·강창희·김용갑·김용환·안병훈·최병렬·현경대 등 모두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들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임금의 허락을 받아 통치를 하는 대리청정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 같다. 임금을 제쳐 놓고 통치를 하는 '섭정'에 가까워 보인다. 이해 못할 점은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이 그를 감싸고도는 까닭이다. 믿을 만한 사람이 없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 주위에 없어서 그런가.

이제껏 행정부·사법부 장악과 공안통치 정국 운영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는 철옹성 같아 보였다. 그런데 이번 문창극 인사 참사는 정권 기반이 얼마나 모래알 같은지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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