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인력 구조가 피라미드형에서 비정상적인항아리형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원이아닌 간부급이 주로 정리되고 신입사원 채용은 크게 줄어 중간층이 비대해진 탓이다.

구조조정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일 수 있지만 노조를 의식한 왜곡된 구조조정 결과라는 지적과 함께 조직의 활력 저하, 생산성 하락, 기강 해이는 물론 장기적으로 인력 공동화를 낳는 등 부작용을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중은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급은 이른바 책임자급(중간층)인 4급의 대리^과장대우^과장급이다. 외환위기 이전 20% 내외였던 4급의 비중은 급속히 불어나 현재 대부분 은행에서 30%가 넘고 일부 은행의 경우 40%에 육박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중간층의 비대화로 조직의 숨통이 트이지 않고 이로 인한 이기적인 조직 문화, 생산성 하락,기강 해이 등이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빛은행 직원들의 무려 140억원에 달하는 거액 연쇄 횡령사고도 기강 해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일부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람을 줄여야 할 판에 신입행원 모집은 꿈도 못꾸면서 하위직인5·6급 행원의 인력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간층은 승진 기회가 적고 하위직은 모셔야 할 상전이 많아 조직의 활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면서“행원 부족을 계약직으로 메우다보니 인건비는 절약되겠지만 아무래도 생산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장기적으로 정규직 신입 행원이 충원되지 않아 구조조정이 완료될 경우 중간층에 틈이 생기는 인력 공동화도 우려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하지만 이는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뿐 새로운 피를 수혈한다는 차원에서 중간조직에 대한 과감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칙적인 구조조정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원 고성수 박사는 “업무자동화 등으로 피라미드 조직이 중요했던 시대는 지났다”면서도 “우리의 경우 아직 금융기법이 세련되지 않아 하부 인력이 부족한 항아리형 구조에서는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고려대 조명현 교수는 “현재의 기형적 인력구조는 노조 때문에임기응변식으로 구조조정을 한 결과”라면서 “직급에 상관없이필요한 부문을 적극 수혈하고 불필요한 부문은 과감히 정리하는합리적이고 유연한 고용시스템이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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