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삼선 실내화는 물에 젖어 질꺽거렸다. 지난밤 천둥과 번개가 요란했고 소나기 오래도록 퍼부었다. 돌침대 삼았던 아스팔트엔 물이 고였다. 배낭과 침낭까지 한 짐 지고 사람들은 앉지 못해 서성거렸다. 노숙농성은 한 달이 가까웠다. 제집인 양 서초동 빌딩 숲길을 헤맸다. 해 지면 잠을 청했고, 해 뜨면 길을 나섰다. 일찍이 본 적 없는 대규모 도심 노숙농성이라고 누군가 평했다. 생활임금 쟁취와 위장폐업 철회, 노조탄압 중단 따위 요구에 열사정신 계승 구호가 뒤따랐다. 누군가 죽어 바란 요구였다. 상복은 종종 바닥에 끌리고 물에 젖었다. 영정은 때때로 구겨지고 찢겼다. 때가 탔고 군데군데 낡았다. 또 한 끼, 국밥을 말았다. 길 묻는 행인에게 친절한 미소로 상세한 답을 줬다. 서비스 정신이 그 와중에 투철했다. 고인 물에는 뭐가 비치는지 그도 궁금했다. 드높은 삼성전자 서초사옥과 노란색 폴리스라인 따위가 거기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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