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대한민국이 조롱당했다. 한 종합일간지는 이렇게 사설에 썼다. ‘대법원의 한국지엠 통상임금 판결이 남긴 것’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였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대니얼 애커슨 지엠 회장과 만나 투자를 조건으로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고 크게 보도됐다. 80억달러 투자 약속을 받고서 대통령이 사법부의 일을 약속했다고 논란이 됐다. 그 뒤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을 전원합의체 재판부로 회부했고 공개변론을 통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속한다고 판단하고도 일정한 경우 신의칙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한국지엠 통상임금 사건이 신의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대통령 약속, 대법원의 사건 처리와 통상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의 신의칙 법리, 그리고 그 법리에 따라 대법원이 한국지엠 사건에 관해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으니 결과적으로 지엠이 박 대통령에게 소송 민원을 제기해 승소한 꼴이 됐다. 정작 한국지엠은 “80억달러 투자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있다고 하니 다국적기업 지엠의 농간에 대한민국이 조롱당했다고 사설에 쓴 것이다. 대한민국은 조롱당했다. 이 말은 대법원이 사측에 승소판결을 해 줬지만 투자 약속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고 있다 해서 오늘 대한민국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미 조롱당했다. 지엠 회장이 대통령을 면담하면서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부탁하는 그날 이미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법원의 판결을 좌우할 수 있는 나라라고 조롱당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박 대통령이 지엠 회장에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라면 대한민국은 사법권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라고 다국적기업 회장에게 대통령이 자인한 것이니 그날 이미 대한민국은 조롱당했다. 이런 지엠 회장의 부탁과 대통령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됐으니 대법원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대통령의 간섭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위해 오히려 통상임금 사건을 다른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게 처리하고 판결해야 했다. 그런데 그 발언 3개월 만에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을 기존 판례법리를 변경할 수 있는 전원합의체 재판부에 회부시켰으니 어쩌면 그날 이미 대한민국 사법부는 대통령에 복종하는 권력기관이라고 대한민국은 조롱당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으로 구성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지난해 12월18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서도 일정한 경우 신의칙 위반에 해당해 추가 임금청구를 할 수 없다며 법보다 기업경영 사정을 앞세운 법리를 만들어 판결을 선고하던 그날 대한민국은 이미 조롱당했다. 그러니 새삼스레 한국지엠 통상임금 사건을 대법원이 신의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해서, 이제 와서 80억달러 투자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해서 대한민국이 조롱당했다고 떠들어 댈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조롱당했다지만 사용자들은 웃고 있다. 피해자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이고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법, 즉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노동자권리가 조롱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파기환송 판결을 가지고 노동자권리타령으로 사는 나는 대법원을 조롱할 마음이 없다. 그저 이번 대법원의 한국지엠 통상임금 판결이 남긴 것이 무엇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그것이 어제, 그리고 오늘은 조롱당했다 해도 내일은 법과 법원의 판결에 노동자권리가 조롱당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 한국지엠 통상임금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이미 지난해 12월18일에 선고됐다. 비록 올해 지난달 29일 대법원 제1부가 판결을 선고한 것이지만 한국지엠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의 법리는 지난해 12월18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가 선고한 것이었다.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있으면 추가 임금청구는 일정한 경우 신의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바로 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를 그대로 옮겨 대법원은 한국지엠 통상임금 사건의 판결문을 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하기휴가비 등 복리후생명목 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이 아니라서 통상임금이 아니고 다만 퇴직하더라도 근무일수만큼 일할계산해서 지급하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번에 한국지엠 사건에서 대법원은 그 법리를 그대로 옮기며 하기휴가비 등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은 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으로서 고정성이 인정되는 통상임금이라고 했다. 이번에 한국지엠 사건에서 대법원은 2, 4, 5, 6, 8, 10, 12월에 각 100%로 연 700%를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이후 정기상여금도 복리후생명목 임금과 같이 반드시 퇴직자에게도 일할계산해서 지급했어야만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됐다. 지난 1월23일 고용노동부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서 퇴직시 일할계산해서 지급하는 경우만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약 40% 사업장만 정기상여금은 퇴직시 일할계산해 지급해 왔다고 조사됐으니 60% 이상 사업장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재판을 통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한 판결은 40% 미만의 사업장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된다. 재직 중인 자에 한해 지급하고 퇴직시 일할계산해 지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규정을 바꾸기만 하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사용자들은 앞다퉈 단체협약, 회사 제 규정 등 취업규칙에서 정한 상여금 지급기준의 변경을 노골적으로 시도했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통해서 사용자는 지급기준을 변경했다. 심지어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노사합의로 변경하는 일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90% 이상의 사업장은 정기상여금은 퇴직시 일할계산해서 지급 않게 될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적용될 사업장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퇴직시 일할계산해서 지급받을 수 있었던 상여금의 일부조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탓에 노동자는 지급받을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니 괜히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소송을 해서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권리만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생겼다. 이런 결과에 대해서는 2000년 중반 지엠대우 사무직 퇴직자 등의 업적연봉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하게 하고, 그것 때문에 생산직 노동자들까지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하는 결과를 가져와 급기야 오늘 사업장마다 통상임금 문제를 제기하도록 했으니 내 책임도 작지 않다. 그러니 이번 한국지엠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는 날, 정기상여금을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 퇴직시 일할계산해 지급하는지를 따져 재직 중인 자에 한해 지급하고 일할계산해서 지급하지 않으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할 것인지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져서 판결문을 읽었다. 비록 내가 맡은 사건은 아니었지만 대리한 사건 이상으로 벌벌거리면서 읽었다. 대법원은 한국지엠 사건에서 2, 4, 5, 6, 8, 10, 12월에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을 뿐 퇴직시 일할계산해 지급하는지를 따져 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으로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는 판결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하기휴가비 등 복리후생명목 임금에 관해서는 이같이 재직 중인 자에 한해 지급하고 퇴직시에 근무일수만큼 일할계산으로도 지급하지 않으니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한 정기상여금에 관한 통상임금 법리를 그대로 옮겨 판결문에 쓰고서 한국지엠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렇게 판결하고 있다. 정기상여금이 퇴직시 일할계산해서 지급했어야만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지 않고 있다. 2, 4, 5, 6, 8, 10, 12월에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 통상임금의 의미와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판결해서 한국지엠 사건에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성에 관해서는 뒤에서 보는 신의칙 위반과는 달리 파기환송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러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성은 대법원이 확정적으로 판결한 것이다. 이제 한국지엠과 동일한 정기상여금 지급기준을 가진 사업장이라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대한민국 법원이 판결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

3. 한국지엠 사건의 대법원 판결 선고에 대해 온통 신의칙 위반이라고 대법원이 판결했다는 뉴스였다. 내가 인터뷰를 했던 <매일노동뉴스>만 정기상여금에 관해서는 재직조건 내지 퇴직시 일할계산해 지급하는지를 따져 판단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신의칙 위반이라고 대법원이 판결했다는 보도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심지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선고한 신의칙 법리를 보다 확대해 판결했다고 일부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한국지엠 사건에서 신의칙에 위반되는지 원심 법원에서 살펴봤어야 했는데 원심 판결은 그렇지 않았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 법원이 신의칙 법리를 따져보았을 리 없었다. 신의칙이 적용될 것인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고 파기환송 판결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조만간 선고될 통상임금 사건들도 대법원은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할 것이다. 문제는 대법원이 과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신의칙 법리를 확대해 판결했는지 하는 것인데 한국지엠 사건에서 신의칙 법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를 그대로 옮겨 판결문에 쓰고 있다. 조금도 그 법리를 완화해 확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원심 법원은 한국지엠 사건에서 청구한 임금기간 동안 노사 간의 임금협상 실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추가 법정수당액·실질임금 인상률·회사의 재정 및 경영상태 등을 심리해 신의칙에 위배되는지 판단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법원이 한국지엠 통상임금 판결로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그때가 되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조롱당했다. 하지만 조롱당한 대한민국의 법원이 어떻게 노동자권리를 취급하는지 눈을 부릅뜨고서 지켜볼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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