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6.6 토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노노모의 노동에세이
삼성은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종란
공인노무사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내 딸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일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었어요. 2인 1조로 내 딸과 같이 일한 이숙영씨도 백혈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둘 다 똑같이 백혈병으로 죽었는데 삼성은 무조건 산재가 아니라고 하고 약속한 치료비도 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내 딸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23)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지난 7년간 누구를 만나든지 “노조가 있었더라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만나는 사람이 활동가든 기자든 작가든 혹은 최근에 열린 삼성전자와의 교섭 자리든 한결같습니다.

저는 황상기 아버님의 이 말이 백번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조가 만능도 아니고 노조가 있는 사업장도 산재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버님의 말씀이 백번 옳다는 생각이 드는 건 76년이나 무노조 정책을 펴며 노동기본권을 박탈한 삼성의 노동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반올림에 제보를 한 삼성의 직업병 피해노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안전교육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사용하는 화학물질 이름이 뭔지도 회사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조별 경쟁을 붙여 성과에 반영하니 동료들마저 경쟁 상대가 되게 하고 회사에 찍소리 못하게 만들었다. 인터록이라는 안전장치는 풀어 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사고는 비일비재했다. 생산성 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지 노동자의 건강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다.”

만약 황상기 아버님의 말씀처럼 삼성에 노조가 있었더라면 생산성만이 강조되는 현장 시스템에 제동을 걸고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장치들이 마련돼 직업병 발병률을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반올림이 삼성전자에 보낸 12가지 교섭요구안(사과·보상·재발방지대책에 대한 요구안) 중에서 재발방지대책 6가지 중 하나로 “안전보건에 대한 노동자의 실질적인 참여권 보장을 위해 삼성전자는 노조의 설립과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항목을 뒀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직업병 대책마련을 위한 삼성전자와 반올림측의 2차 교섭에서는 회사측이 구체적인 답변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우선 합의한 것은 “앞으로 삼성전자와 반올림 양 당사자가 성실하게 교섭한다. 집회나 시위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피해가족들과 활동가들에게 삼성전자가 행한 고소·고발은 취하한다. 3차 교섭을 6월 내로 재개한다”는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약속대로 3차 교섭부터는 삼성전자측은 반올림이 제시한 구체적인 요구안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일부 언론들은 삼성 눈치 보기를 하며 직업병 문제와 노조문제가 연결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생뚱맞은 이슈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5월29일자 이데일리 기자수첩 ‘삼성 직업병 사태 꼬이게 하는 노조 이슈’ 참고)

그러나 실제 직업병 발생률을 줄이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기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4월9일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원이 내놓은 ‘노사협력과 산업재해에 관한 연구’에서도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산재 발생률이 노조가 없는 사업장보다 눈에 띄게 낮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삼성전자와 반올림측의 직업병 대책마련을 위한 교섭이 진정성 있게 진행이 되려면 삼성이 노조인정 문제를 비껴가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현재 삼성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삼성SDI 등 삼성 노동자들이 76년 무노조 역사를 끝내고 민주노조를 만들어 노조인정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외치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부당해고를 하고, 서비스센터를 폐업하고, 일감을 주지 않아 생활고에 허덕이게 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극한으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노조가 생긴 지 1년도 안 돼 노조탄압으로 두 명이 죽고 노조 지도부 세 명이 억울하게 구속됐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을 포함해 반올림은 삼성의 노조탄압의 문제는 직업병 문제와 결코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직업병 문제에 대해 단순히 무마용으로 협상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보상하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정성 있게 협상에 임하겠다는 것이라면, 노조탄압은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이종란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종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