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9일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세계 139개국의 노동권 현황을 조사해 ‘세계노동자권리지수’(GRI)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최하위인 5등급을 받았다. ‘노동권이 지켜질 보장이 없는 나라’로 분류됐다. 노동권이 있다 해도 지켜지지 않고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노동권에서 이 나라 노동자들은 국가 대한민국으로부터 세계 최하위의 보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임금을 얼마나 받든지, 억대 연봉의 노동자라도 그의 노동자로서 권리인 노동권은 5등급이다. 노동권이 있다 해도 지켜질 보장이 없다.

노동권이 가장 잘 보장된 1등급 나라는 덴마크·노르웨이·벨기에·핀란드·프랑스·이탈리아·우루과이 등 18개국이 선정됐다. 부러울 뿐이다. 2등급에는 스위스·일본·러시아 등 26개국, 3등급에는 영국·대만·호주·캐나다 등 33개국, 4등급은 미국·홍콩 등 30개국이다. 미국이야 4등급을 받을 만하고, 일본이 2등급을 받았다는 것이 의외다. 이상 4등급까지가 대한민국보다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에서 앞선 나라들이다. 139개국 중 107개국이 포함됐다. 5등급으로 평가된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인도·나이지리아·라오스·잠비아·필리핀·방글라데시 등 23개국이다. 5+등급으로 소말리아·남수단·시리아 등이 분류됐으나 이는 내전 등을 이유로 법치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들이다. 이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의 노동권 수준이다. 국민소득이 2만여달러이고, 조만간 3만달러, 4만달러 시대가 온다고 요란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노동권은 세계 최하위 나라, 후진국이다.

국제노총은 2006년 11월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과 세계노동연맹(WCL)이 통합한 세계 최대 노동조합단체로서 현재 155개국 1억7천500만명의 노동자가 가입해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설립신고를 3차례나 반려하고 조합간부들을 해고했고, 전국교직원노조 설립을 취소했으며, 전국철도노조 파업투쟁을 이유로 노조간부들을 대규모 해고한 것 등을 대한민국 노동자가 노동권이 보장받지 못한 대표 사례라고 국제노총은 지적했다. 97개 항목에 대한 조사를 했다는데 각 항목에서 대한민국은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처럼 많은 항목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지만 대표 사례로 지적한 것들을 보면 이번 노동자권리지수는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활동할 권리, 즉 노동기본권 보장에 주된 관심을 두고 조사한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이번 발표로 각국 정부와 사용자에게 경각심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이 같은 뉴스 기사가 보도된 직후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객관적 평가라고 할 수 없다고 즉각 반박했다. 즉 고용노동부는 지난 22일 이 세계노동자권리지수는 "각국 노동법령의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부합 여부와 가맹노조가 제출한 각국 노동상황에 대한 답변서 분석 결과를 점수화한 것"이라며 "이를 객관적인 평가로 보기는 곤란하다"는 반박자료를 발표했다. 국제노총은 이 노동자권리지수 발표를 통해서 각 나라의 정부와 사용자에게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보장하도록 경각심을 주고자 했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졸지에 국제노총이 객관적인 평가조차 하지 않은 자료나 발표하는 국제노동단체라는 망신을 당하게 생겼다. 대한민국 정부에 노동권 보장을 위한 경각심을 주기는커녕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가맹노조의 말만 듣고서 엉터리 발표나 하는 국제노동단체로 취급받았으니 오히려 객관적으로 조사한 평가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자기 경각심부터 갖춰야 한다는 비난을 받게 생겼다.

2. 노동자의 권리, 특히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교섭·쟁의 등으로 활동할 자유인 노동기본권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에게 어떻게 보장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헌법(제33조)은 노동자에게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했다. 바로 대한민국 노동자의 기본권, 노동기본권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정부도 사용자도 헌법이 이렇게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노동 3권이 보장돼 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ILO에 가입한 회원국이다. 그렇지만 8대 기본협약 중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결사의 자유·단체교섭·강제노동에 관한 협약들(29호·87호·98호·105호 협약)은 단 하나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대로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면 ILO의 회원국으로서 이런 협약을 비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굳이 비준하지 않은 나라라고 ILO로부터 비준 권고를 받을 일도 없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한다고 헌법에서 선언했으니 대한민국 정부와 사용자는 마땅히 그에 따라 보장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면 ILO 협약을 비준하더라도 뭐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전 세계 150개국 이상이 비준한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에 관한 87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으며, 160개국 이상이 비준한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98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이 2개의 기본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과 미국, 두 나라뿐이다.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29호와 105호 협약 모두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뭐 선진국 클럽이라고 으스대는 OECD 국가들 사이의 비교여서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ILO 가입국가 전체로 보자. 대한민국은 189개 협약 중 28개 협약만 비준해서 183개 국가 중 128위다. 조사 연도별로 순위변동이 있지만 어떤 것이라도 100위권 밖이어서 노동권 보장에선 후진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비준한 협약수에 따른 단순 비교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기본협약조차도 비준 않고 있다는 점까지 살펴서 보면 협약 비준에서 있어서도 대한민국은 명백히 세계 최하위의 나라다.

3.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하거나 가입할 수 있다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규정하고 있지만(5조) 해고자 조합원자격 문제·일정직급 이상의 공무원 등의 자격 제한 등으로 일정한 노동자의 단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거기다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를 통해 국가가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 자격을 실질적으로 심사하고 있다. 설립된 노동조합의 운영은 노동부·노동위원회 등 국가기관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교섭과 쟁의 등 노동조합의 활동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로 인해서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 심지어 사용자의 개입까지 보장하고 있다.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는 그 주체·목적·시기와 절차·수단과 방법에서 엄격하게 제한·금지되고 있다. 이상은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법을 대한민국 정부가 법대로 집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해야 할 대한민국의 법률이 이같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법은 1953년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으로 제정된 이래 지금까지 한 차례도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개정된 적이 없다. 제·개정될 때마다 노동기본권은 행사가 제한되고, 금지됐다. 그래서 나는 오늘 대한민국 노동자에게는 법이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고 있다고 말해줄 수가 없다. 노조법은 1953년 이후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법률 중 현행 법률이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고 금지하는 데서 최고수준이다. 가장 많은 유형으로 제한하고, 가장 강한 수준에서 규제를 가하고 있다.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는 순위를 지수로 발표한다면 당연히 현행 법률이 사상 최하위등급을 받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을 그 주체·목적·시기와 절차·수단과 방법 등으로 법이 정한 바를 위반하는 경우 국가가 처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고 노조법 위반으로 처벌한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파업 등 단순히 노무 제공을 거부하는 쟁의행위라도 처벌받는다. 노조법이 정한 주체·목적·시기와 절차·수단과 방법을 위반해서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용자가 노동조합·노조간부 및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징계 등 민사책임을 묻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상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에 관한 대한민국의 법이다. 이 법은 이렇게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구체적인 사건에서 법대로 집행되고 있다.

4. ‘노동권이 있다 해도 지켜지지 않고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라고 국제노총은 대한민국 노동자의 노동권을 조사해서 발표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평가는 객관적이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법은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조차도 보장해 주고 있지 않다. 법으로 노동권조차도 보장되지 않는 나라라고 발표했어야 객관적일 수 있었다. 국제노총은 공무원노조·교직원노조·철도노조 등 사례를 대표로 들어 지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교섭·쟁의 등으로 활동하는 모든 사례들이 문제였다고 지적했어야 했다. 가맹한 대한민국 노동조합이 지적된 사례를 위주로 국제노총에 답변서를 작성해서 보고한 것일 게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이런 국제노총의 발표를 반박했다. 객관적으로 조사하지 않고서 국제노총이 엉터리 발표를 한 것이라고 노동부는 언론 반박문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세계 최하위 5등급이 아니라는 것인가. 노동권이 지켜질 보장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ILO로부터 기본협약을 비준하라고 촉구받지 말고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즉시 비준부터 추진하고서 국제노총의 지수 발표를 반박해야 한다. 노동부는 노조법 등 대한민국의 법률을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서 전면적으로 개폐하고서 반박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객관적일 수 있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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