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언제나처럼’이라고 해야 할까. 잊히는 게 가장 두렵다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너무나 빠르게 일상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수를 확인하는 일도 그만두게 됐다. 그 사이에 국민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자식을 둔 이는 경선의 승리자가 됐고, 대통령은 해양경찰이 문제이니 해경을 없애겠다는 아주 손쉬운 해답을 내놓았다. 검찰은 유병언 부자의 검거에 실패했으며 새로운 국무총리가 지명됐다. 지난 한 달간 한국 사회를 멈췄던 세월호 참사 이후 6·4 지방선거는 정해진 일정대로 다가왔고, 출근길 전철 역사 앞은 온갖 후보 캠프의 유세로 소란스럽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정서와 선거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기묘하게 교차하는 공간에서, 투표로 변화를 만들자는 구호와 정치기획이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전국 규모의 선거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사전투표제를 알리며 투표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선거를 열흘 앞둔 지금 우리는 투표 참여의 당위만을 외치고 있을 뿐 실상 투표의 진짜 근거를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있지 않을까. 젊은이들의 투표가 사회를 바꾼다는 수사, 청년들을 선거에 동원하고 소비하려는 마케팅은 여전한데, 정작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언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음달 4일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사전투표를 애용하라는 메시지 외에 ‘청년들이 왜 투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음에도,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정치’는 우리의 현실에서 참 요원한 것이다. 등록금의 값으로 사회적 존경심을 계산하는 후보가 있는 한편, 월세 부담에 고통 받는 청년들을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서 대출을 권유하는 정책이 나오고, 그 와중에 국회에서는 ‘발전’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청년발전기본법 제정안이 발의됐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어느 웹툰의 제목이 말하듯이 아직 살아남지 못한 ‘미생(未生)’이다. 우리들은 총체적으로 고장 났음이 증명된 이 사회에서 미래를 꿈꿔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미생의 상태로 남겨질지 모를 존재들이다.

청년에게서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묻는다. 청년에게 변화를 말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청년에게 투표를 권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우리가 정치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투표에 참여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가. 다음 세대의 다른 미래를 위해 이번 지방선거는 어떤 계기가 될 수 있는가. 청년에게 스스로 답을 찾을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반드시 답해야 할 문제다.

6·4 지방선거가 마무리되기까지 남아 있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그런 대화를 시작하기를 제안한다. 각 후보 캠프는 청년들을 단지 좋은 그림 만들기에 동원하기보다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응답하기를 바란다. 투표 참여를 호소하기 전에 그들의 삶을 정말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한 하나의 길, 조금이라도 기존과는 다른 선거를 만드는 방법이다. 다음 세대의 다른 미래를 위해.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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