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미 영화평론가

<슬기로운 해법>은 ‘대한민국 제4의 권력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소위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보수언론의 문제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다.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을 쓴 김성재가 기획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 <어머니> 등을 만들었던 태준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꼼꼼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중동 보수언론이 그간 벌여 온 만행을 고발하고, 자본에 의해 잠식될 수밖에 없는 언론환경을 보여 준다. 정연주·홍세화·주진우·노순택·김성재·최경영·한윤형·김상봉 등이 인터뷰이로 출연해 설명을 더한다.

1. 의도적인 오보 또는 날조

<슬기로운 해법>은 2012년 조선일보가 태풍사진을 1면에 실으면서, 2009년에 찍었던 사진을 사용한 에피소드로 포문을 연다. 정연주 전 KBS사장은 “명백한 날조이고, 외국 같으면 언론사가 문을 닫을 일”이라고 개탄한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그 오보는 그리 놀랍지 않다. 얼마 전 YTN은 무선조종비행기 발견 뉴스를 내보내면서 김정은이 무선조종비행기를 보고 흐뭇해하는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썼다. 하지만 그 화면은 완전 날조였다. 김정은이 북한시설을 시찰하면서 찍은 사진에 무선조종비행기를 집어넣어 합성한 사진이란 사실이 네티즌들에 의해 밝혀졌다. 국방부는 무선조종비행기가 모두 북한에서 온 것이라 발표하고, 언론들은 ‘북한 무인기’라는 단어로 기정사실화하지만 사실 무선조종비행기가 정말 북한에서 온 건지, 보수언론의 말처럼 정말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됐으며 그 기능이 정말 두려워할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혹과 논란이 분분하다.

그런데도 YTN은 김정은이 무선조종비행기를 흡족하게 바라보는 날조된 사진을 배경화면에 사용함으로써 무선조종비행기가 북한의 김정은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남한으로 날려 보낸 전략무기라는 인상을 시청자들의 뇌리에 심는다. 결국 날조된 사진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화하는 마법이 완성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슬기로운 해법>이 고발하는 날조보다 훨씬 원색적인 날조를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다.

영화는 또 2009년 한 고등학생이 철도파업으로 서울대 면접시험에 가지 못해 낙방했다는 사연을 실은 중앙일보 기사를 언급한다. 그러나 면접 당일 철도는 정상 운행됐다. 명백한 오보였지만 사연은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여론은 악화됐다. 결국 철도노조가 200명의 해고와 100억원의 손해배상을 떠안았다. 중앙일보는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쳐 2년 뒤에 작은 정정기사를 싣는 것으로 끝났다. 언론이 의도적인 오보를 내고 사건 전달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 사건에 개입해 버리는 사례로 꼽힐 만하다.

오보를 통해 언론이 사건에 개입하는 사례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오보를 빼놓을 수 없다. 방송사들은 ‘학생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선내에 갇힌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놓치는 데 일조했다. 육·해·공, 군·관·민이 총출동한 구조작업이 펼쳐지고 있다는 거짓보도로 현장에서 실질적인 구조가 이뤄지지 않음을 보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을 분노에 빠뜨렸다.

2. 권력에 장악된 언론을 두고 느끼는 격세지감

어쩌면 <슬기로운 해법>은 너무 늦게 나온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지적하는 조중동의 악의적 행태는 익히 아는 바이고, 그동안 KBS와 MBC 등 공중파 방송들마저 청와대에 의해 완전히 장악돼 있었음이 내부고발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냈고, 그것에 거부하는 방송사노조가 항의하면서 많은 해직자들이 생긴 것을 보여 준다. 관객들은 그 낙하산 사장으로 인해 공중파 방송들이 어떻게 굴절됐는지를 현재형으로 보고 있다.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 "서울 지하철 사고를 키워라, 박원순 시장이 한 사과는 빼라"는 등의 보도지침이 하달되고 있었다. KBS 사장이 청와대의 명령이라며 보도국장의 사퇴를 울면서 종용하고 “네가 거부하면 나도 무사하지 못하다”는 말을 했다는 증언은 충격적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언론사 해직기자들은 지금 <뉴스타파> <고발뉴스> 등 대안언론을 통해 조중동과 공중파 방송에 맞서고 있으며, 며칠 전 KBS 기자와 PD들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장의 퇴임을 내걸고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영화는 신문구독자 감소로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차분히 설명한다.

그런데 지금 종편 중 JTBC는 다른 종편과 차별화를 꾀해 세월호 사건을 통해 가장 신뢰할 만한 공정방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영화가 미처 다루지 못한 현실의 외연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아득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3. 자본에 길들여지는 언론을 누가 감시할 것인가

그럼에도 <슬기로운 해법>을 봐야 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영화는 단순히 조중동의 악행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입의 80%를 광고에 의존하는 신문사들이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자본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쏟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보여 준다. 압도적인 지면을 차지하는 건설사 광고를 싣기 위해 신문사들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기사들을 써 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기사들은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부동산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정책을 무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재벌 삼성이 언론사들을 길들이는 방식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가장 큰 광고주인 삼성은 언론사들에게 광고와 무관한 지원금을 골고루 나눠 주는가 하면 삼성 언론상까지 제정해 기자들에게 상금을 준다. 하지만 삼성이 언론사에게 주는 돈은 공짜가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나 이건희 회장의 사면 등 특정한 사건을 앞두고 각 언론사들이 취하는 보도태도에 따라 광고비와 지원금은 중단된다. 이건희 회장은 그렇게 관리한 신문사들이 쓴 삼성 관련 기사들을 직원의 특수한 수작업을 거친 문서로 읽는다.

영화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조중동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애썼던 모습을 보여 주면서 퇴임 후 조중동이 어떤 악의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적인 타살을 이끌어 냈는지를 짚어 준다. 노무현 5주기를 맞아 그 과정을 다시 곱씹는 심정은 실로 착잡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두 사람에게는 절대 전화하지 않겠다. 두 사람은 KBS 사장과 검찰총장”이라고 말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말은 깊은 회한을 남긴다.

제목인 ‘슬기로운 해법’은 보수언론이 노무현의 혐의에 어떤 사회적 형벌을 가할 것인가를 말하며 쓴 수사다. 제목은 다시 역설적으로 묻는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슬기로운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관객,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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