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복지가 지난 선거의 화두였다면 이번 선거의 화두는 안전이 될 겁니다. 언제까지 버스 노동자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운전대를 잡아야 하나요.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운수종사자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뿌리 뽑지 않으면 단언컨대 우리 사회에 안전은 없습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양재동 연맹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류근중(62·사진) 자동차노조연맹 위원장은 "국민의 안전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운수종사자 노동시간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한 법부터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 위원장은 "다음 국회 회기가 시작되면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라며 "국회가 방기한다면 노조의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특례제도에 따라 운수업을 비롯한 12개 업종은 노사 대표가 서면합의할 경우 1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2011년부터 근기법 개정 논의에 불이 붙었지만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류 위원장은 "노사정이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충분한 공감대를 이룬 상황"이라며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정책연맹 구상해 왔다"

- 올해 2월에 당선된 후 석 달이 지났다. 단위노조 지부장부터 지역노조 조직국장·사무처장·위원장을 거쳐 연맹 위원장으로 계단을 밟아 왔는데. 어떤 연맹을 만들 것인가.

"연맹 위원장은 혜성같이 등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 정책연맹을 만들 것이다. 오랫동안 구상해 왔다. 임금협상은 지역노조에서 하고 있다. 연맹이 지역노조의 임금·단체협상을 지도하고 지원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역노조의 몫이다. 연맹은 정책활동에 치중해야 한다.

법률 하나가 제정되고 개정될 때마다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사회경제적 여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책연맹이 중요한 이유다. 앞으로 3년 그리고 그 이후 누가 하든 연맹이 정책에 중심을 잡고 활동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겠다.

조합원들도 20년 전과는 다르다. 연맹도 바뀌어야 한다. 20년 전 버스기사들 중에 자가용 끌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다들 승용차 한 대 정도는 소유하고 있다. 생활기반이 어느 정도 잡혔다는 말이다. 조합원들이 원하는 것은 좀 더 적게 일하고, 배차시간 부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다. 연맹이 정책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 세월호 참사로 모두가 큰 슬픔에 빠졌다. 연맹에도 조합원 가족 피해소식이 잇따랐는데.

"세월호 참사는 밝혀진 것처럼 인재다. 돈과 이윤을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한 정부와 사업주들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이번 사고로 연맹 조합원 8명의 자녀가 희생되거나 실종됐다. 지금도 조합원 1명은 실종된 아이를 찾고 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연맹 내부에서 모금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구조작업이 모두 마무리되면 연맹에서 조합원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조금이나마 아픔을 함께하려고 한다."

- 세월호 참사로 해상뿐만 아니라 육상에서도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버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버스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현실을 무시한 촉박한 배차운행시간이다. 최근에 연맹이 조합원들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조합원 10명 중 6명이 교통사고 원인으로 '배차운행시간 부족'을 꼽았다.

그래도 버스준공영제 시행 지역은 사정이 조금 낫다. 그렇지 못한 지역은 한 탕이라도 더 뛰기 위해 기사들을 거리로 내몬다. 종점에 돌아와도 쉴 시간이 없다. 운행하면서도 배차시간을 맞추느라 과속하고 신호를 위반한다. 결국 교통사고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전한 버스운행을 담보할 수 없다.

배차운행시간은 인력을 충분하게 운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사업장마다 기사가 부족하다. 기사 인력수급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사용자들이 인건비 증가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서울의 경우 경영평가(2천점 만점)에서 인건비 절감 항목('인건비 관리의 적정화를 통한 경영 합리화 분야')에 100점을 배점해 놨다.

버스 노동자의 임금체계는 일당제나 다름없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임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인력이 늘어도 인건비가 크게 늘지 않는 구조다. 그런데도 회사는 얼마 안 되는 4대 보험료나 복지비용을 줄이려고 적정인원을 안 뽑고, 서울시는 이를 장려한다. 이것부터 바꿔야 한다."

- 근로시간특례제도가 5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송파구 버스사고도 장시간 노동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장시간 운전이 교통사고의 원인이라는 점은 정부도 인정한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소위가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지만 전문가지원단이 의미 있는 결론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특례업종을 기존 26개에서 10개로 축소하고 주간 노동시간을 60시간으로 제한하자고 했다. 1일 최소 11시간의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연맹은 근로시간특례제도 개정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육상운수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규율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외국 사례를 분석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특별법 초안을 준비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정부가 문제다. 경영상 이유를 내세우는 사용자 입장을 고려해 매번 법 개정을 미뤘다. 그 결과가 오늘날 버스운수업의 폐단을 부른 것이다.

노사정 간에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하반기에 국회가 열리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법 개정을 미적거리면 노조의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다."

-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버스공약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후보들 간 선명성 다툼이 치열한데. 경기도에서 불거진 버스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버스 공공성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연간 56억명이 버스를 탄다. 국민의 삶에서 버스를 떼어 놓을 수는 없다. 그런 버스가 민간의 이윤 논리에 방치된 것은 성장주의 경제정책 때문이다.

준공영제가 도입되면서 시민들이 가장 좋아했다. 버스 운행에 정시성이 확보되고 환승까지 되면서 요금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어떤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도 평준화됐다. 옛날에는 황금노선이냐 비수익노선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수익성 없는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는 임금이 제때 나오지 않았다. 시내버스 정류장마다 손님을 더 태우려고 버스 간 경쟁이 심각했다. 준공영제 시행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다. 사고가 대폭 줄어들고 기사들의 정신적·육체적 피로도 감소했다.

경기도지사로 출마한 여야 후보 모두 준공영제 도입을 공약했다. 경기도가 워낙 넓어 전역에 걸쳐 준공영제를 시행하기에는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다. 시·군·구에 따라 부분적으로 도입해서 점점 확대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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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중 위원장은
1983년 고향(세종시) 선배를 따라 지금은 없어진 서울 성북구의 버스회사에 입사했다. 이듬해 노조 지부장을 맡았는데 회사가 곧 부도나면서 노조가 경영까지 떠맡게 됐다. 조합원들의 임금을 지급하면 빚쟁이들이 용역경비를 데리고 쫓아와 돈을 갚으라고 성화를 부렸다. 이들과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다가 전과도 달게 됐다.

서울버스노조에는 97년 조직국장으로 발탁된 후 올해 2월까지 몸담았다. 2006년 서울버스노조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마다 달랐던 조합원의 정년을 58세로 못 박은 것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정년을 연장했다. 서울시 버스 노사는 지난해 단체협상에서 건강상 이상이 없는 한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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