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1.22 금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노노모의 노동에세이
세월호 참사에서 ‘노동자’는 존재했나
권오상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삶)

“가만히 있으라.”

지난달 16일 오전 9시께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 믿을 수 없는 사고 소식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그로부터 한 달 넘게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 주듯이 정부기관의 무능한 대처와 방치, 언론기관의 연속된 오보, 부패와 유착관계의 폭로, 일부 누리꾼들의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모욕, 일부 정치인들의 선거활동 이용, 노동법을 비롯한 관계법령 위반 사례들이 반복됐다.

그리고 이 사회가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 세월호 참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노란 리본’과 ‘단원고 학생들’일 것이다. 추모행렬은 ‘내 아들 같은, 내 딸 같은 학생들’의 비극에 애도했다. 세월호 탑승객 476명 중 안산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325명으로 절대 다수에 해당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외의 희생자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그 죽음이 주목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세월호 참사에서 처음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들은 책임을 망각하고 승객들을 버려두고 도망친 선원들이었다. 뭐 그리 급했는지 팬티 바람에 구명정으로 옮겨 타는 선장을 보며 저렇게 도망간 승무원들만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아니나 다를까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승무원들 소식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통장에 돈이 있으니 아이들 등록금으로 써.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해 끊어.”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씨. “나는 너희들 다 구조하고 나갈 거야. 선원이 마지막이야.” 승무원 박지영씨.

그 외에도 정현선 승무원, 제자들을 구하다 숨진 남윤철·최혜정 단원고 교사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영웅’으로 불리며 그 이름이 물 위로 떠올랐다. 비통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들은 자신의 목숨과 가족들의 생계마저 버리고 노동자로서 소임을 다했다. 그 순간 얼마나 무거운 결정을 내려야 했을까.

그런데 ‘영웅’이 되지 못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 이름조차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선원으로 배에 탄 승무원들은 26명이었다. 그중 구조된 승무원은 15명이다. 구조되지 못한 승무원 11명 중 ‘영웅’이 아니었던 조리사 등을 비롯한 다른 노동자들은 노란 리본의 추모인파들에게 각인되지 못했다.

그들 중 돈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에 나선 노동자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노동자’라기보다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불렸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노동법 위반에다 2박3일에 11만7천원이라는 저임금도 존재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회사로부터 직원임을 부정당하며 탑승자 명단에서 누락됐다. 나중에는 ‘노동자’가 아닌 ‘승객’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선원이 맞으니 선원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밝히자 해양수산부는 선원이 아닐 수 있으니 고려해 보겠다며 '떠넘기기'와 '회피'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불꽃놀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근로자들은 목숨을 잃고 난 이후에도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로 사고처리 문제에서 청해진해운의 책임 여부가 논란이 됐다. 살아서는 유령처럼 숨겨지더니 죽어서도 귀찮은 물건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구조작업을 수행하던 민간잠수사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잠수병으로 긴급이송된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빠른 수색활동을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다, 그도 노동자다. ‘과로사회’에서는 생명을 구조하는 작업마저 ‘과로’하도록 밀어내고 있다. 구조인력이 부족하다면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하고, 구조시간이 제한적이라면 그 시간을 늘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람이 저 지경이 되도록 일을 시키면 안 된다. 함께 살아야 한다.

어느 곳에서든 일하는 노동자가 있고, 당연한 듯 보이는 그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관광도 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건 세월호 참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추모행렬을 보며 왜 쌍용차에는, 왜 삼성 백혈병에는, 왜 현대중공업에는 세월호 참사만큼 추모행렬이 모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들이 ‘노동자’였기 때문에 내 살과 뼈 같은 비통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는 마음들이 수많은 일터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어야 했던 무수한 노동자들과 그들 가족의 비극에도 닿기를 희망한다.

권오상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오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