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세월호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와 살인미수다.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적용한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은 셈이다. 그간의 선박사고에서 적용되지 않았던 형벌이다. 형법에 따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5년 이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형이 내려지는 게 관례였다. 이준석 선장에게 적용된 살인죄는 그런 면에서 이례적이다. 때문에 검찰은 법원이 살인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검찰은 도주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그렇다면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소유주인 유병언 전 회장 일가에겐 어떤 형벌이 내려질까.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세 가지로 지목했다.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선박 개조, 적정 용량의 세배를 초과하는 화물 적재, 평형수를 채우지 않아 복원력 상실 등이다. 돈벌이에 눈먼 청해진해운의 맨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청해진해운과 소유주에게도 무거운 형벌을 내려야 하는 증거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 및 임원, 화물담당자, 구명장비 점검업체 대표 등을 구속했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대표적인 형벌은 업무상과실치사사상죄다.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대해선 배임·횡령 등 경영상의 불법혐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에 이어 금융감독원까지 전방위 나서 유병언 일가를 수사하고 있지만 기껏해야 비리혐의를 찾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기업주나 실소유주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유사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난 2월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가 단적인 예이다. 부산외대 신입생 등 10명이 숨지고 100명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눈이 많이 내린 것도 영향을 줬지만 부실시공을 사고 원인으로 짚었다. 경찰은 지난 3월 말 마우나리조트 사업본부장을 포함해 설계·시공 책임자 등 6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대형 사고를 냈음에도 마우나리조트 대표는 물론 소유주인 코오롱그룹에는 전혀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실무 책임자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법인 대표나 소유주에게는 면죄부를 준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기업주 또는 소유주에 대한 처벌규정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23조(안전조치)에 따르면 사업주를 의무이행 주체로 보고 있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형법은 법인인 사업주에 직접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 양벌 규정에 따라 법인에 벌금형만 부과할 뿐이다. 이런 사례로는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08년 1월 4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화재참사를 일으킨 코리아냉장 대표는 2천만원의 벌금형만 받았다. 이처럼 대형사고가 일어나도 사업주를 구속시킨 전례는 없다.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현장 소장이나 안전관리자만 처벌받는다.

늦었지만 국회가 이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기업살인법’을 제정하자는 제안이다. 여당(새누리당)의 서청원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에 기업살인법을 포함시키겠다고 나섰다. 교통·항만·전기·가스 등 기업들의 안전조치 소홀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해 이와 유사한 기업살인처벌법을 발의한 바 있다. 지난해 산업재해를 당한 재해자는 9만1천824명에 달하며, 사망한 노동자는 2천명에 달한다.

기업살인법은 영국이 선례다. 이 법의 핵심은 안전조치에 소홀한 기업을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든 것이다. 지난 2008년 기업살인법이 시행된 후 2011년 약 25%나 산재 사망사고가 줄었다.영국의 경우 사망사고 1명이 발생했더라도 기업주에게 최고 7억원의 벌금형을 부과했다. 영국이 주목받는 이유는 높은 벌금액수 탓은 아니다. 기업살인법 제정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꾀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기업살인으로 규정한 것이다. 산재사고를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할 경우 범죄로 인식되지 않은 문화를 뜯어고치려 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흘렀다. 수사 결과를 보면 세월호 참사는 예고된 비극이었다. 사고의 책임은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일가에 있다면 구조 책임은 정부 당국에 있다고 봐야 한다.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할지 우선순위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야당에 이어 여당 의원이 대형 재난 또는 산재 사망사고를 중대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종전에 비하면 그나마 일보 전진이다. ‘안전불감증’ 타령만 하는 것보다 낫다. 기업살인법은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야 한다. 우리에겐 산업재해는 곧 기업의 중대범죄라는 인식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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