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공인노무사
(법무법인 피플)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2누27505 유족보상금지급부결처분취소

1. 사건의 개요

1986년 3월1일부터 국세청 공무원으로 근무를 해 오던 고인은 2008년 10월27일부터 ○○지방국세청 조사2국 조사1과 3계장으로 근무하다가 2009년 11월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엄마! 정말 미안하오, ○○이와 ○○이를 잘 부탁하오. 내가 죽는 이유는 사무실의 업무과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조직개편이 돼 직원이 동원발령이 났으면 발령을 내줘야지, 일은 발령 날 것을 감안해 계속 떨어지는데 직원을 보내 주지 않고, … (중략) … 내 죽음은 사무실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 둡니다”는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본인 주거지인 아파트 22층에서 뛰어 내려 사망했다. 이에 고인의 처인 원고는 2010년 4월14일 “고인이 공무상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렸고 이로 인해 자살을 감행해 사망했다”고 주장하면서 공무원연금법 제61조에 따른 유족보상금의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고인이 기질적 소인에 의해 스스로 자살을 결의했으므로 공무상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유족보상금의 지급을 거부하자 이를 취소하는 소송에 이르게 된 사건이다.

2. 대상 판결의 요지

망인의 불면증 치료내역, 직장 내부 조사자료, 우울증의 가능성에 대해서 소견한 병원 감정기록 등이 증거로 제출된 대상 판결의 원심은 “망인의 업무량이 사망 무렵 급격히 증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우울증이 평균적인 근로자로서 감수하고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중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고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이는 업무과다를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없고, 고인의 유서 내용은 고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살원인일 뿐 의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원심과 달리 대상 판결은 항소가 이유 있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했다. 판결에서는 책임감이 강한 고인이 ○○지방국세청 본청에서 근무하면서 정상적인 근무시간보다 40% 가량 초과근무 하면서 많은 업무량을 성실하게 처리해 왔는데 2009년 9월1일부터는 심리분석전담반장까지 겸해 업무량이 더욱 많아졌음에도 충원돼야 할 직원 3명이 충원되지 않아 부하 직원이 해야 할 업무까지 처리한 사실을 인정해 고인의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를 인정했다. 여기에 특별승진 대상자에서 제외되자 심한 절망감과 함께 자신을 특별승진 대상자에서 제외하기 위해 부당한 다면평가를 실시했다는 배신감까지 느껴 고인이 중증의 우울장애가 발병했다고 인정했다. 고인이 중증의 우울장애로 인해 정신적 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공상의 스트레스와 절망감 등이 공동으로 작용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공무와 고인의 우울장애 발병 및 사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시했다.

3. 대상 판결의 의의

최초로 법원의 명령에 따른 ‘심리적 부검’을 도입해 그 결과를 결정적인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이 대상 판결의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심리적 부검’이란 자살자의 심리적 자살 원인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을 말한다. 죽음에 이른 물리적 사인이 아닌 심리적 요인을 규명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과 전문가 등 전문 검사관이 자살자의 가족·친구들을 만나 심층면접을 진행하고, 고인의 일기 등 개인적 기록과 병원의 의무기록, 검시관의 진술 등을 수집해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 판결의 재판부는 원심의 증거만으로는 망인의 사망원인을 추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감정인으로 민○○ 연세대 의대 교수를 선임해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다. 민 교수는 고인의 유족 4명과 직장동료 3명 등 총 7명을 10시간 동안 면담해 ① 고인이 “일은 많은데 직원이 없어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는 말을 수시로 한 사실, ② 자살 직전 부하 직원에게 “몸이 힘들어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다”고 전화했다가 “일이 많아 출근해야 할 것 같다”고 한 사실, ③ 자살 직전 34인치였던 허리둘레가 31인치로 줄었을 정도로 식욕을 잃었다는 사실 등을 밝혔다. 민 교수는 이러한 면담을 통해 밝혀진 사실과 기존의 증거 등을 토대로 “고인이 과다한 업무량에도 승진을 위해 삶의 상당 부분을 투자했는데 승진이 좌절돼 상실감을 느꼈고, 조직개편으로 인한 업무 증가에 따른 혼란상태, 그 과정에서 우울장애가 발생해 자살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감정인의 ‘심리적 부검’ 내용을 근거로 원심을 뒤집는 판결한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심리적 부검’은 자살을 원인으로 한 공무상재해(업무상재해) 사건에서 자살자의 진료기록이나 경찰이 조사한 사건기록을 위주로 전문가에게 감정을 맡기는 기존방식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자살자 주위 사람들에 대한 심층적 면담을 통해서 유전적 요인·신경생물학적 요인·심리적 요인·사회적 요인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는 자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힌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기록만으로 감정하는 것이 아니라 심층적 면담을 통한 자살 원인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지만, 자살자가 생전에 정신질환의 진료를 받지 않아 기록이 없는 경우에는 기록만으로 감정한다면 제대로 감정할 수 없는 것을 밝혀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살에 대한 공무상재해(업무상재해)를 판단하면서 전문가에 의한 ‘심리적 부검’을 진행하다는 것은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및 직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자에게 가한 긴장도 내지 중압감의 정도와 지속시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황과 자살자를 둘러싼 주위 상황, 우울증의 발병과 자살행위의 시기 등 기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기존 정신질환의 유무 및 가족력 등에 비춰 그 자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두2029 판결)와 “근로자가 자살한 경우에도 자살의 원인이 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 여부는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등을 기준으로 해 판단하게 되나, 당해 근로자가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는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앞서 본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2. 3. 15 선고 2011두24611 판결)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자살과 업무상재해와의 상당인과관계 판단의 경직성을 당해 근로자의 ‘심리적 부검’을 통해 밝혀냄으로써 자살에 대한 업무상재해의 인정 범위를 보다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결론을 대신해

앞으로 자살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심리적 부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심리적 부검’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변형되기 쉬운 과거 기억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가족이나 동료가 우호적으로 진술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대상 판결을 계기로 ‘심리적 부검’에 대한 명확한 절차와 진술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을 규정해 ‘심리적 부검’의 객관성을 계속적으로 높이는 노력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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