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국씨티은행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미국 본사의 지휘로 진행되고 있는 지점 통폐합 때문이다. 2004년 6월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흡수통합에 반대하며 한미은행노조가 파업을 벌인 지 꼭 10년째 되는 올해 노사관계가 다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10년 만에 노사관계 극단으로 치달아

금융노조 씨티은행지부(위원장 김영준)의 반발에도 씨티은행은 예고했던 일정대로 내달리고 있다. 회사는 전체 190개 지점 중 통폐합 대상 56곳의 명단을 지난 9일 확정해 발표했다. 서울 32곳을 비롯해 수도권만 49곳이다. 광역자치단체에 단 한 곳의 지점만 운영하는 전주와 순천·춘천에서도 문을 닫는다. 전북과 전남·강원도에서 씨티은행 네트워크가 사라지는 셈이다. 1차 통폐합 대상 점포 5곳이 이달 9일 폐쇄된 것을 시작으로 다음달 20일까지 순차적으로 지점이 사라진다. 노동자들은 “시중은행이 아니라 수도권지방은행이 됐다”고 한탄했다.

지부가 낸 은행지점 폐쇄금지 가처분 신청도 최근 기각됐다. 지부는 지점폐쇄를 60일 전에 통보하고 노조와 합의하도록 한 단체협약 위반인 만큼 중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그러나 "점포폐쇄가 단체협약 합의 대상인 정리해고가 아니고 정리해고를 하려 하면 별도의 권리구제 절차를 거칠 수 있다"는 이유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노동뉴스>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씨티은행 본점에서 만난 김영준(46·사진) 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9일 폐점된 5곳의 인력 50여명은 12일부터 인근점포로 파견됐어요. 파견된 직원들은 자리조차 없습니다. 5곳이 이런데 56개 점포를 없애면 그 인력들을 어쩌겠습니까. 애초부터 비용을 줄이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시작한 점포 통폐합입니다. 구조조정이 없을 리가 없어요. 점포 하나를 줄이면 9억원이 감축되는데 그중 6억원이 인건비예요.”

실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해고를 위한 사전작업은 시작됐다. 지난달 15일에 지부에 보낸 공문에서 인사경영 사항을 협의하자던 은행은 같은달 30일과 이달 7일 잇따라 희망퇴직을 언급하는 공문을 지부에 보냈다. 김 위원장은 “자체 정보와 회사 브리핑을 보면 다음달 30일까지 500명에서 650명을 구조조정하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김앤장, 650명 자르면 성공보수 5억원?

은행의 잇단 노사교섭 요청도 부담스럽다. “충실한 협의를 했다는 정리해고 명분 쌓기 아니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씨티은행의 노조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곳은 노동계에서 '악명 높은'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다.

지부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올해 김앤장과 680만달러(70억원)에 1년치 자문계약을 체결했다. 자문료 외에도 별도 사건에 따라 수임료를 받는 식이다. 지점폐쇄 금지 가처분 신청도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재판에서 사측 대리인이었던 홍준호 변호사가 맡았다.

김 위원장은 “김앤장은 점포 통폐합이 경영권이기 때문에 60일 전에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이미 지부와 협의를 했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기억도 나지 않는데 커피 한 잔 하면서 얘기한 것도 ‘성실한 협의’ 항목에 들어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김앤장이 씨티은행과 정리해고 인원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는 이면계약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예컨대 500명은 1억원, 650명은 5억원의 성공보수를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가처분 신청 재판 과정에서 지부측 법률대리인이 제기한 사안이다. 김앤장은 처음에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침묵했다. 재판장의 자료제출 요구에는 별도의 사건이라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부는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준법투쟁에서 시작해 태업, 지역별 순회파업, 전면파업으로 계단을 밟아 가겠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정시 출근과 연장근로수당 지급요청, 생리휴가 신청과 같은 ‘권리찾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논의에 진전이 없으면 정시 퇴근이나 일괄 점심시간 사용으로 은행측을 압박할 방침이다. 권리도 찾고 은행에 비용 압박도 주는 이른바 ‘스마트한 투쟁’이다.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 소송전도 검토 중이다.

“씨티은행이 용역비 빼내 가는 것을 보세요. 용역비가 1조원 넘게 나갔어요. 다국적 기업의 전형적인 행태입니다. 은행은 관행이라고 해명하지만 명백한 국부유출이고 회계분식이고 탈세입니다. 다국적 기업의 불건전한 영업행위를 모니터링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먹튀가 계속될 겁니다. 이번 싸움이 그런 장치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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