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했다는 뉴스다. 비서진이 초기에 판단을 잘해서 근처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이송했고 그곳 의사들이 응급처치를 잘해서 이건희 회장을 살릴 수 있었다고 골든타임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 세월호 침몰 사태에서의 대응과 달랐다고 한다. 3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세월호 사태 뉴스를 비집고 회장님의 건강이상은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렇게 주요 뉴스다. 분명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법은 평등을 말하지만 그 법에서 평등이 이 세상에서 사람을 동등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똑똑히 보여 주고 있는 오늘이다. 최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의 급격한 사업구조 개편을 언론은 이건희 회장의 건강이상과 연결지어 보도하고 있다. 이런 뉴스 기사를 읽다가 나는 문득 한 사건을 떠올렸다. 지난 2일 나는 의뢰인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소장 하나를 작성해서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도시바삼성스토리지테크놀로지코리아(주) 노동자들을 삼성전자의 근로자로 인정하라는 소송이었다.

2. 최근 삼성전자가 회사 소유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그래서 시끄러운 사업장이다. 지난해 말에는 삼성전자가 삼성코닝의 지분을 매각해서 문제가 됐다. 삼성전자가 미국자본 코닝과 합작해서 운영해 온 회사 삼성코닝의 지분을 코닝에 전부 매각해서 삼성코닝 노동자들은 회사 사업이 건실한데도 삼성그룹에 있을 때보다 성과급 등 근로조건이 저하되고 고용불안에 처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삼성코닝과 마찬가지로 외국자본과 합작해서 운영해 온 이 사업장도 삼성전자가 매각을 추진하고 3년 뒤에는 삼성전자는 모든 소유 지분을 정리하고서 완전히 철수할 예정이고, 이 사업장의 광저장장치(ODD) 사업은 전망이 없으니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근로조건 저하와 고용불안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 계열사로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취급받아오다가 졸지에 고용마저 불안한 지경에 몰리게 됐다. 주식의 매각이야 주주의 일이다. 경영권을 행사할 정도로 주식을 매각하면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것인데 그래도 이 세상에서는 노동자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소유의 힘이라고 법은 선언하고 있다. 회사에 아무리 많은 노동자가 있고 노동자들이 혁신과 노력으로 노동해서 아무리 많은 생산을 하더라도 거대한 규모로 회사를 성장시켜 내도 회사의 주인은 노동자가 아니다. 소유권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권리 중 으뜸이고 원천이며 이 세상에서 권력은 그걸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거짓과 장식을 모두 걷어낸 뒤에 우리 세상의 법령과 판례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 보면 들을 수 있다. 노동자들은 삼성전자의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주식처분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뿐이고 스스로는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노동자가 하는 것이 노조다. 그래서 삼성코닝과 마찬가지로 이 사업장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배하는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사업장일 때는 할 생각조차 않던 단결권 행사를 삼성이 아니게 되자 삼성을 상대로 투쟁하겠다고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했다. 노동자의 과반수 노조에 가입했다. 그러니 사측은 교섭과 쟁의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라서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노조는 회사의 매각을 결정하거나 경영권 지분을 소유한 주주와 합의로 매각을 결정할 지위가 보장돼 있지 않다. 법은 노조는 단지 조합원의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해 사용자와 교섭하고 쟁의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많은 노동자, 심지어는 수만명의 노동자가 조합원인 노조라도 매각 등 회사의 운명에 관해서는 단 1명의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도 갖지 못한다. 매각 등 회사의 운명에 관해서는 단 1주를 소유한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도 갖지 못한다. 노동자 모두의 무게는, 그 단결체인 노조의 권한은 단 주주 1명보다도 단 주식 1주보다도 가볍고 보잘 것 없다. 이렇게 우리 세상에서 법은 사람의 수로 권리의 무게를 달지 않고 법의 추는 오직 소유의 크기로 기운다. 수만명 사람의 가치보다 1원의 가치가 크다고 매각 등 회사의 처분에 관해서 법은 선언하고 있다. 회사를 매각할 수 있는 1명의 주주가 회사 노동자의 수만명보다도 무겁다고 이 세상의 법은 말하고 있으니 회장의 건강이상이 관심이고 주요 뉴스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3. 2004년 삼성전자는 사업부 개편에 따라 도시바와 합작해 이 사업장을 설립하고서 사업부 소속 노동자들을 이 사업장으로 전적시켰다. 삼성전자에 채용돼서 근무해 오다가 회사 경영방침에 따라 이 사업장으로 소속이 변경돼서 근무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삼성전자가 그 사업이 전망이 없다고 철수하기로 정하고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어째야겠나. 제 사업의 필요에 따라 사업부에서 분리해서 별도 법인 사업장을 설립하고서 그 사업부 노동자들을 그 경영방침에 의해 전적시켰다면 그 필요가 없어진 이젠 노동자들에게 전적 전의 사업장으로 복귀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런데 전적에 관한 기존의 법리는 이에 관해서는 판례도 논의도 없다. 전적됐으면 전적된 사업장의 근로자인 거고 그것으로 전부라고 판결하고, 전적된 사업장의 근로자이니 전적한 사업장과는 관계없는 자라고 논의한다. 사용자는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전적할 권한을 행사하는데 노동자는 그 필요가 없어졌어도 그 사용자의 노동자로 돌아갈 권리가 없다. 전적은 노동자가 동의해야 하는 효력 있는 것이고(대법원 2006.1.12. 선고 2005두9873 판결 등) 동의했으니 더 이상 관계없는 자라고 권리는 없다고 당신은 법을 말할지 모른다. 글쎄다. 그래서 나도 지금은 어렵다고 이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상담해 줬다. 그런데 글쎄다. 그래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는 더 이상 쓸모없어졌으니 노동자는 버려도 그만이라고 취급되는 것이니 나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기존 전적의 법리를 의심해야만 하겠다.

4. 사용자의 경영상 필요에 따른 전적에 있어서 노동자 동의는 통상적인 전적과는 다르다. 사용자가 그걸 받아내고자 조직적으로 행동한다. 회사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회사조직을 가동해 집행한다. 자신의 경영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니 그것이 회사의 업무이고 회사조직은 그렇게 행동한다. 노조 등으로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개별 노동자는 버텨낼 수가 없다. 이런 데다 동의하지 말고 버티라고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 그 동안 수도 없이 자문해 줬지만 쓸데없었다. 어떤 때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인데도 이런 내 자문은 소용이 없었다. 이건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진행된 전적 사례들을 찾아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니 사용자의 경영상 필요에 의한 전적에서 노동자의 동의는 적어도 과반노조 등의 동의가 없다면 동의로 취급을 하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 개인의 동의 외에, 사용자 회사를 상대로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도의 노동자단체가 전적에 동의해야만 효력이 인정되는 것이라고 논의하고 판결해야 한다. 근로계약은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근로 제공을 하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그에 따른 대가 임금을 지급받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계약이라고 법은 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2조). 전적명령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를 변경하는 사용자의 처분이다. 이건 계약의 한 당사자를 변경하는 것이다. 계약 자유의 원칙을 선언한 근대의 세상에서도 예외적인 것이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다른 사용자로 전적하는 행위는 인정될 수가 없고 그건 당연히 효력이 없다. 그래서 계약의 한 당사자인 근로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이 세상의 법과 판례는 그것이 전적의 법리라고 말해 왔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전적에서 노동자의 동의는 특별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의 법리로 볼 것도 아니었다. 계약 자유의 세상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법리인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의 동의가 있으면 사용자가 노동자를 전적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니 사용자의 권리로 선언하고 있는 법리다. 사용자를 위한 법리다. 한 사업부를 별도 법인의 다른 사용자에게 매각시키고서 그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전적은 사실상 사용자가 노동자를 매매하는 것이고 법이 노동자의 동의로 이를 허용하고 있다면 법은 노동자 동의라는 요건으로 사용자에게 이를 보장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그 노동자의 동의조차도 계약 자유의 세상에서 마땅히 보장돼야 할 계약의 자유로운 의사는 오늘 사용자의 경영상 필요에 의한 전적에 있어서는 노동자에게 보장되지 않는다. 사용자는 전적 방침이 정해지면 회사조직을 통해서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낸다. 이때 회사조직은 그 조직이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음에도 사용자를 위해서만 사용자의 의지만을 관철하기 위해서 작동된다. 이때 노동자에게는 회사조직은 사용자의 의지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공포고 흉기다. 여기다 대고 무슨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해 주기 위해 노동자권리가 법과 판례의 법리로서 보장된 거라고 노동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전적은 유효하다고 떠들어 대는 것은 바보짓이다. 그저 계약 자유의 세상과 법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특별히 무엇을 더 보장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이 세상의 법이 선언한 계약 자유를 보장해 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5. 어디 전적뿐이겠는가. 이 자본의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해서 세상의 법질서를 수정해야 한다고 거창하게 내세울 것도 없다. 지금 노동자의 권리를 잃게 하는 수많은 사용자의 처분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저 노동자를 이 세상이 선언한 법 앞에 평등하다는 국민, 계약 자유의 주체로서 사람으로 인정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어렵다. 그것이 안 된다고 노동자는 전적의 이름으로 매매되고 제멋대로 버려진다. 이 세상에서 사람, 인민은 법 앞에서는 평등이라고 말하지만 노동자인 그는 사용자 앞에서 평등을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세상이 선언한 계약 자유조차도 노동자는 그 자유를 잊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세월호로 침몰하지 않으려면 이 세상이 서 있는 자유가 거짓과 장식으로 전락해 버린 부실한 것이니 그걸 바로잡아 노동자의 자유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자본의 탐욕에 세상이 침몰해 버리기 전에 남아 있는 골든타임을 오늘 우리는 이렇게 속절없이 흘려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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