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지난 어버이날 밤, 세월호 희생자들의 어린 영정들이 부모의 품에 안겨 분향소 밖을 나왔다. KBS 보도국장의 망언과 지금까지의 편파보도에 항의하기 위해 안산의 유가족들은 서울 KBS 본사로 향했고, 결국 청와대 앞에까지 이르러 밤을 지새우며 연좌를 이어 갔다. 상황은 현장을 찾은 KBS 사장의 사과로 일단락됐지만, 경찰이 세운 벽에 가로막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외칠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호소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들끓게 했다.

침묵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애도하는 긴 시간을 지나 분노하고 행동하는 움직임들이 시작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집단적 행동의 사회적 양식으로 자리 잡은 ‘촛불’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밤거리를 매일 밝히고 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력히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 국민에게 동참하고 행동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에 대한 응답은 5월10일 안산 촛불로 드러났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결합한 가운데 2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안산으로 모였고, 전국 각지 150곳이 넘는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러한 흐름은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질 것이라 한다.

청년들 또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청년·대학생 단체들은 국무총리의 단독 사의표명과 이에 대한 조건부 수리라는 정부의 잘라내기식 민심수습에 공동으로 반대하며,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선언했다.

“함부로 사과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책임진다 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물러난다 하지 마십시오. 이 참사의 책임을 지는 방식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명명백백히 밝힌 다음에, 실종자 전원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그 다음에 국민이 정합니다.”

온라인 계정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바꾸는 캠페인은 거리에서 다양한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서 시작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추모행사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며 행동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추모공간에서 찾을 수 없었던 ‘사회’라는 영역이 이제야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형성되고 있는 사회적 힘들을 현 국면에 대한 대응에 그치지 말고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고 재건하기 위한 ‘사회 만들기’라는 장기적 과제의 동력으로 이어 가야 한다. 국가의 역할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개인과 국가를 매개해야 할 광범위한 지대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정권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한다 해도, 세월호 사건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숙제를 풀어 가기 위한 출발점은 결국 시민들 스스로의 자기조직화 모델,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를 만드는 데 있다.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 ‘조직’과 ‘사회’와 ‘정치’를 다시 사고해야 한다. 고장 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지금 바로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각자의 현장과 조직에서 토론을 계속 열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작은 집단들의 개별적인 토론과 활동을 계속해서 연결하고 확장시켜 더 큰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시작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지금 바로 여기서.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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