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그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노조사무실 곳곳을 돌아보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위원장실을 떠나 있기 일쑤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추진력 있는 사람'으로 평한다.

지난 3월28일 전국공무원노조 7기 위원장으로 취임한 이충재(44·사진) 위원장은 조직개편과 사업계획 수립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하는 분위기를 쇄신하자며 사무실 칸막이까지 없앴다. 그럼에도 주말에는 집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한다고 노조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 위원장은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것이고, 당연한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노조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인다. 정부는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를 거듭 반려한 데 이어 공무원연금에 손을 대겠다는 입장이다. 이 위원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 역할을 해내는 게 중요하다”며 “총파업에 준하는 공무원연금 사수 총투쟁을 벌이겠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조사무실에서 취임 한 달을 맞은 그를 만났다. 이 위원장은 노조 중앙교육국장·광양시지부장·민주공무원노조 사무처장·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대정부 교섭단 대표를 지냈다.

- 언제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했나.

“1989년 19살의 나이로 전남 광양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권위적인 공직사회에 문제의식을 갖던 어느 날 한 후배가 전남도지사의 부당한 업무지시를 비판하는 글을 써 징계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를 막아 내는 과정에서 단결의 소중함을 느꼈다. 광양지역에 직장협의회를 설립했고 이후 공무원노조 추진기획단에 참여했다.”

“국가가 공적연금 책임 안 지겠다는 건가”

- 정부는 공무원연금 적자가 커지고 국가재정이 빈약해 연금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논리는 ‘국가는 공적연금에 대한 책임을 안 질 테니 사보험에 돈 넣으세요’라는 말과 다름없다. 공적연금은 개인부담 외에도 국가의 책무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은행적금과 다르다. 적자가 불가피하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개인이 낸 돈을 적립하는 식으로만 계산해 적자를 과대하게 부각시키며 법적으로 보장된 연금을 못 준다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적자 폭이 크고 수급대상자가 재정에 기여하지도 않는 기초연금은 주지 말아야 한다. 30년 안에 재정고갈이 예측되고 있는 국민연금은 또 어찌할 것인가. 연금이 날아가 노후가 위태로워지는 문제는 공무원뿐 아니라 전 국민이 30년 안에 겪을 수 있는 큰 재난이다. 국민연금제도가 미숙하고 혜택이 낮은 게 더 큰 문제인데, 공무원연금만 높다고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적연금의 본질과 특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겠다.”

- 정부는 공무원들이 혜택을 많이 받는다고 주장한다. 시민사회에서도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방식으로 조정하는 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제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전자는 노후보장 성격이라면 후자는 노후보장에 더불어 퇴직금과 고용보험 미보장·영리행위 금지·노동 3권 제한과 같은 불이익을 감내한 데 따른 보상 성격이 있다. 독일에서는 아예 정부가 전액을 부담한다. 물론 국민연금 방식으로 조정하는 논의를 할 수도 있다. 다만 앞서 말한 불이익이 개선되고 낮은 보수를 현실화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 정기훈 기자


- 최근 안전행정부가 훈령을 바꿨다. 연금제도 논의 과정에서 공무원을 배제하려는 것 같은데. 보수언론은 민간전문가로만 논의그룹을 구성하자고 주장한다.

“국가가 연금제도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다. 연금은 사회적 재분배 성격도 있다. 재정이 없다면 부유층에 증세를 하든가 재정을 늘릴 대책을 내야 한다. 정부나 민간전문가들은 돈을 아낄 생각만 하고 있다. 언론이 언급하는 민간전문가들이 과연 전문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라는) 보건사회연구원만 봐도 연구원 평균 보수가 연 7천만원이고 퇴임 후에도 안정적인 자리가 보장돼 있다. 이처럼 노후보장의 절박성을 모르고, 오히려 대기업 보험사의 로비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사회적 재분배 관점이 아닌 재정 관점에서 연금에 손을 대려고 한다. 그들은 재정전문가일지는 몰라도 연금전문가는 아니다.”

“대통령이 책임 피하는데 누가 책임의식 갖겠나”

이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직사회를 굳어 버리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최근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그 같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 세월호 참사로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이번 참사에서 공무원들이 왜 그렇게 무기력했다고 보나.

“현대의 국가재난은 여러 재난요인이 섞인 복합재난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컨트롤타워는 청와대가 돼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관리부문을 쪼개 버렸다. 그 아래에서 공무원들의 권한다툼이 벌어졌다. 소방방재 전문인력이 배제됐고, 그 자리를 행정·경찰공무원이 장악했다. 사고수습용 행정이 아니라 대통령 보고용 행정을 한 이유다.”

- 99년 화성 씨랜드 참사 직전에 씨랜드 설립 인·허가를 끝까지 내주지 않았던 이장덕 계장 같은 공무원도 있었다. 그처럼 재난을 예방하고 원칙적으로 복무할 수 있는 소신 있는 공무원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최고 권한자인 대통령이 책임을 피하는데 누가 책임의식을 갖겠나. 공무원들이 소신껏 일하면 처벌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당장 우리 노조가 ‘국민의 공무원이 되겠다’고 나서면 징계·해고를 하지 않았나. 공직사회에 ‘권력의 지시만 따르라’고 신호를 주는 것이다. 관료시스템 개혁 주장도 나오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청와대 개혁이다. 청와대가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과도하게 틀어쥔 권한을 없애야 한다. 권한을 아래로 내려 주고 공무원이 소신껏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 주면 된다.”
 

▲ 정기훈 기자


- 대법원과 행정법원이 최근 잇따라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정치권의 눈치를 너무 본 판결이다. 법원은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본다는 규약을 문제 삼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노조가 해고자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판단하는 문제는 노조의 고유권한이다.

노조 설립신고는 고용노동부 과장 전결사항일 뿐인데도 대통령 재가를 얻어야 하는 정치적 문제가 돼 버렸다. 설립신고 투쟁은 계속할 것이다. 다만 조급하게 하지는 않겠다. 기본적으로는 정부와 노조가 대화를 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 접근도 시도할 생각이다.”

“노조 설립신고 투쟁 계속하겠다”

- 6·4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공세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노조의 지방선거 목표와 전략은 뭔가.


“지자체장이 누구이냐에 따라 노조활동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방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실제 정책을 틀어쥔 것은 중앙정부다. 국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회나 정당에 우리의 정책대안을 전달할 것이다. 정책노조를 지향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런 역량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우리의 역량이 쌓인 만큼 정치권에서 반응이 나오지 않겠나.”

- 올해 주요 사업과제로 ‘민중행정과 사회적 책무’를 강조했는데.

“권력을 중심으로 짜인 행정을 국민을 위해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행정·세무·사회복지 등 정책을 만들 때부터 실제 집행 과정을 염두에 두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의미다. 앞으로 그런 사례와 모범을 만들고 발굴할 것이다. 1년에 한 번씩 이를 총화하는 민중행정 실천대회도 열 생각이다. 시민사회와 연대·협력하면서 시민의 관점에서 검증을 받을 것이다. 노조 내부에 민중행정실도 신설했다.”

- 임원선거에서 부실 논란으로 노조가 진통을 겪었다. 어떻게 수습할 생각인가.

“오랜 기간 법외노조로 있다 보니 우리 내부의 제도와 의식이 미비했다. 그것이 종합적으로 터진 것이 이번 임원선거에서였다. 현재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진상조사와 선거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고칠 것은 고치겠다.”

글=윤성희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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