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노조

"대구에 있을 때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책상 위에 자랑스럽게 올려놨는데 서울에 올라오니까 분위기가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서랍에 다시 넣었습니다. 대구에 내려가서도 지인들한테 말했어요. 지금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방선거고 뭐고 전국적으로 (새누리당이) 완패할 거라고 말입니다."

지난달 4일 치러진 전력노조 임원선거에서 당선된 신동진(52·사진) 위원장. 2010년부터 한국노총 대구본부 의장을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맺게 된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을 서랍에 집어넣을 만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전력산업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에 화가 나 있었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따라 '부채과다 중점관리기관'으로 찍힌 한국전력은 부채 절감을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요구받고 있다. 그는 정부가 대화통로를 열지 않으면서 노동계와의 반목상태가 악화하고 있다고 봤다.

신 위원장은 "가장 좋은 것은 안 싸우고 대화를 통해 서로 윈-윈 하는 것"이라며 "정부도 명분을 갖고 우리도 명분을 찾는다면 굳이 머리띠 매고 나가서 투쟁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로 합의점을 찾는 게 어용은 아니다"며 "하지만 정부가 끝까지 노동계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극한 투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합리적인 것을 자꾸 비정상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있습니까. 구속을 각오하고 싸워야지요."

<매일노동뉴스>가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전 본사 노조사무실에서 신 위원장을 만났다.

"정부가 먼저 대화창구 열어야"

-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관련해 전력노조가 어떤 행보를 취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4일 대의원대회에서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는데.

"작금의 문제는 대화창구가 없다는 것이다. 공기업들이 다 그렇겠지만 사(社)가 사(社)가 아니다. 사장이나 임원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심하게 말하면 사장과 대화할 이유가 없다. (사장이) 힘이 없는데 무슨 대화를 하겠나.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를 하겠지만 공공기관 정상화는 임원들과 대화로 풀 사안이 아니다.

우리에게 사측은 정부다. 그런데 대화창구가 없다. 공공노련도 안 되고 한국노총도 안 되고 우리도 안 된다. 이 부분이 가장 힘들다. 최근에 사적으로 정부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당신들이 할 얘기만 하지 말고 우리 얘기 좀 들어보라고 했다. 대화를 계속 피하면 파업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게 아니라면 대화를 하자고 했다.

노조도 정부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개선할 점이 있으면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합리적으로 하고 있는데, 일률적으로 줄 세우기를 해서 모든 공기업이 똑같이 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잘한 부분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자꾸 공기업을 이상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너무 불쾌하다. 한전이 공기업 맏형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매번 대표로 혼나야 하나."

-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어떻게 보나.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전력산업 시장화 정책이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모양새다.

"정부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발주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가 원래는 2월 말 발표될 예정이었는데, 6월 말까지로 연기됐다. 아마도 6·4 지방선거 때문인 것 같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은 전력산업에 경쟁도입과 시장화 필요성을 주장해 온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다. 전문가들과 민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얘기를 분명하게 전달할 생각이다."

"대기업은 혜택 주면서 공공노동자들만 쥐어짜나"

- 시장주의자들은 모든 경쟁을 절대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공공부문에서 경쟁체제가 바람직한가.

"공기업에서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윤을 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그건 너무 위험한 얘기다. 국민에게 공공서비스를 하라면서 이윤을 남기라면 공기업에서 '공'자를 빼야 한다.

공기업 부채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결국은 그 부채가 누구 때문에 발생했나. 정부 정책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면 민영화를 해야 한다. 민간기업이 도서산간지역에 전기공급을 하겠나. 농사용 전기공급을 하겠나. 산업용 전기를 저렇게 엉터리로 싸게 줄 수 있을까. 못 준다. 내가 사장이라도 이윤을 남기려면 그렇게 못한다. 정부는 우리에게 이윤을 남기라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 공공성을 버리라는 얘기다. 공공성을 버리면 우리도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전기요금 제대로 올리고 농어촌산간지역에 전기 공급 안 하고, 도서발전 안 하고, 심야전기 안 하면 돈이 왜 안 남겠나. 다시 말해 공기업들에게 부채 많다고 몰아세우는 것이 엉터리라는 얘기다.

최근 3년간 전기요금 할인혜택을 가장 많이 본 곳이 삼성전자다. 할인받은 금액이 4천억원이나 된다. 4천억원이 누구 돈인가. 바로 국민의 돈이다. 주택용 전기에 누진세를 붙여 돈을 더 받아 대기업에 혜택을 준 거다. 국민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언론에서도 그런 얘기는 안 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부채니 방만이니 하면서 쥐꼬리 만한 복지 기금을 줄이라고 한다. 이해할 수 있겠나."

신 위원장은 최근 정부가 공공부문 노사의 단체협약에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관련해 "노조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노조의 존재이유는 근로조건 개선과 복지증진이다. 복지를 줄이라는 것은 노조를 없애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법에 있는 기본조차 무시하고 덤벼드는 형국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누가 동의하겠나. 소송으로 가야지. 소송으로 가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마피아는 산자부에도 있다”

그는 특히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조명되고 있는 해양수산부와 그 산하단체·해운업계가 유착한 이른바 '해양마피아(해피아)' 문제가 그쪽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해수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피아라고 하는데, 전 부처에 마피아가 다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도 있다. 예를 들어 전력거래소가 왜 필요하나. 한전에서도 전력거래소가 하는 일을 모두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력거래소를 없애지 않고 있다. 자기들 자리를 보전하려고 존치시키는 것이다. 발전자회사 임원만 68명이나 된다. 1명당 연봉 1억원씩만 해도 1년에 68억원, 10년이면 680억원이다. 이런 돈은 왜 아깝다고 하지 않나."

노조는 내부적으로 사내근로복지기금 고갈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노조는 한전 수익의 5%를 출연받아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조성해 왔다. 그 재원으로 학자금이나 건강검진비 등 조합원들의 복지사업을 꾸렸다.

그런데 한전이 6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재원이 바닥을 드러냈다. 노조는 사측에 특별출연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기존 복지사업을 줄여야 하는 터라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사내근로복지기금 문제는 어떻게 풀 생각인가.

"한전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도 문제이지만 사내근로복지기금 고갈 때문에 복지사업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양면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해당 문제에 대해 100% 낙관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비관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인데, 분명히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조 간부들한테도 '돈 없는데 어떻게 하냐'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일러뒀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진짜 안 된다. 된다, 된다 해야지 일이 풀리는 법이다. 조합원들이 6년간 고통을 겪었다. 매번 참자, 이겨 내자고 했다. 이제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갈 때가 됐다고 본다. 봄은 왔지만 조합원들의 체감온도는 한겨울이다. 얼음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을 때다. 그런 방향으로 임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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