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퇴근길 한 교회 앞 분향소에 쓰여 있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잊지 않겠다고,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다짐의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미안하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들 앞에서 사과와 다짐의 말을 하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날부터 대한민국은 오늘도 세월호다. 침몰할 때까지 얼마나 무심하고 무책임했던지를 우리는 사과하고, 침몰과 함께 드러나고 있는 추악한 몰골에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우리는 다짐하고 있다.

2. 문득 나는 세월호에서 빠져나와 거창하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았다. 이 세상은 자본의 운동으로 재생산된다. 자본의 운동이 일어나는 곳,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사용자의 보호에 맡겨져 있다. 사용자는 보호의무 내지 안전배려의무를 진다. 대법원은 “사용자는 고용 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여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피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대법원 1999. 2. 23 선고 97다12082 판결 등) 그리고 “이러한 사용자의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 위반 행위가 불법행위의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책임과 경합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부담하게 된다.”(대법원 1997. 4. 25 선고 96다53086 판결 등) 그런데도 수도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산업재해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해하고서 이 세상을 재생산해 내는 자본의 운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용자가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면 그걸 위한 설비와 관리체계를 갖춘다면 사업장에서 산업재해 0% 달성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그것을 위한 비용보다 어느 정도 산업재해를 감수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들고 더 남는 장사이니 오늘도 세상은 자본의 타산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재물로 재생산되고 있다.

3. 노동자를 위험에 몰아넣더라도 비용을 절감해서 매출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경영효율화고 자본은 그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달려간다. 착한 자본에 대한 기대는 몽상이다. 사용자에게 윤리적으로 호소해 봐야 소용없는 짓이다. 자본을 규제할 강제만이 노동자를 지켜낼 수 있다. 사실 세월호 참사는 무엇보다도 착할 수가 없는 자본을 감시하고 규제해야 할 국가의 실패였다. 법을 비웃는 위법행위가 거리낌 없이 저질러졌고 거기서 법을 회복시켜 줘야 할 국가권력의 법집행은 철저히 유기됐다. 법이 위법에 양보하고 법집행권력은 위법 앞에 무력했다. 그런데 세월호에서 참사는 사고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재물로 희생시키는 자본의 일은 사업이다. 매년 이 나라에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사용자에 의해서 세월호 희생자 몇 배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다. 2013년 정부 공식통계로 잡힌 산재사망자수만 1천929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희생시켜 세상이 재생산되고 있는데도 이 세상을 사는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제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었다.

4. 지금 세월호 승무원은 악당으로 불리고 있다. 유기치사 등으로 세월호 승무원 15명이 구속됐다. 그러나 이 선박직 승무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승무원 14명 중 지금까지 6명은 실종자고, 3명은 사망자다. 승무원으로 근무하다 사망한 것이므로 어제 추모의 날에 우리가 추모해야 할 산재사망노동자였다. 박지영(22) 등 승무원은 승객들을 구하려다 숨졌다. 세월호를 타고 학생들의 수행여행을 인솔했던 단원고 교사 14명 중 지금까지 4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됐다. 일반 노동자들과는 달리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공상으로 승인돼서 처리된다는 것과는 별개로, 교사로서 근무 중에 사망했으니 역시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에 함께 추모될 노동자들이다.

5. 세월호 침몰사태는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승객을 희생시켰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실종자는 300명이 넘는다.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주)이라는 회사가 운행하는 여객선이었다. 청해진해운(주)은 여객운송 등을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사업이란 자본이 노동자를 부려 가치를 증식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여객운송사업에는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 세월호에서 이번 침몰의 위험은 얼마든지 시설·관리체계 등의 확보로 피할 수 있었다. 세월호로 여객운송사업을 하는 청해진해운(주)은 비용 절감과 이윤 확보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서 여객선을 운항시켜왔다. 절제를 모르는 자본은 세월호를 침몰시켜 수많은 승객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실종케 했다. 세월호에서 자본의 재생산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어디 세월호에서만이겠는가. 단지 노동자를 재물로 해서 자본은 이 세상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자본의 생산품·서비스의 구매자까지 희생시켰다. 이것이 자본의 속성이 아니겠냐고 묻고 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세상을 두고서는 말하지 않는다. 수도 없이 사고가 나서 희생이 돼도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고 말하지 않는다.

6. 이 세상에서 사업 중에 발생하는 사고는 그 책임을 져야 할 자는 명확하다. 그 사업을 행해서 이익을 취하는 자가 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는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서 사업이 수행되고 거기서 노동자가, 그 상품 내지 서비스의 구매자가 희생되더라도 그 책임은 그 사업으로 이익을 취하는 자가 지고 있지 못하다. 세월호에서 청해진해운(주)은 노동자들의 사용자이고 승객들의 희생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다. 그러나 청해진해운(주)은 자본의 주인이 만든 것이고 주인을 대신해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든 법인이며, 그것도 주식회사로 출자한 주식의 지분만큼만 책임을 지면 되는 유한책임의 회사이다. 청해진해운(주)이라는 법인을 두고서는 자본의 인격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설립신고한 주식회사 청해진해운(주)만 보일 뿐이다. 지금 수사기관에서는 청해진해운(주)의 실질적 소유주 유병언을 조사하고 있다. 각종 비리 등의 혐의로 처벌하고자 수사하고 있다. 그 혐의에 관해서는 사법처리가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과연 실질적 소유주라는 유병언이 이번 침몰사태로 인한 법적 책임까지 대한민국의 법원에서 묻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세월호 침몰사태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을 지울 수 있을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이 대단한 성과를 올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나는 그저 각종 비리 등을 적발해서 그것으로 사법처리하지 않을까 예상하는 것은 내가 성급한 것일까. 제발 이번 세월호 침몰사태에서는 이런 내 예상이 성급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7. 이 세상, 이 자본의 세상은 과실책임의 원칙을 선언하고서 태어났다. 제가 행한 과실에 대하여만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이것을 이 세상의 법은 선언하고서 태어났다. 그러니 그가 사용자든 노동자든 누구든 제 고의나 과실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발생시켰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자본가는 직접 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법인을 만들고, 그 법인이 노동자를 고용하고 사업의 주체로 내세워졌고, 그 법인은 주식회사·유한회사 등으로 유한책임제도를 도입했다. 이것으로 이 세상을 탄생시킨 법은 자본에겐 책임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줬다. 오늘 더 이상 자본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은 책임의 원칙을 무너뜨리고서 오늘 세월호가 있다. 오늘 세월호 뉴스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침몰하는 세월호가 아닐까. 승객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권력과 자본이 제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선언하고서 운행하고 있는 세월호가 아닐까. 그렇다면 살기 위해서는 밖으로 뛰어내려야 한단 말인가. 그러지 않기 위해서 나는 세월호 분향소에서 읽는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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