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못다 핀 꽃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지금 대한민국은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묻는다. 누구의 책임이냐고. 정부 역시 일차적 책임자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무리한 증축에 눈감고 화물량이 넘치고 결박이 느슨해도 출항을 허가했다. 어린 학생들 325명을 포함한 476명을 태우고 말이다. 인명경시에 규제완화가 톡톡히 한몫했음을 여지없이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들보는 외면한 채 먼저 탈출한 선장에게 ‘살인죄’를 언급하고 또 다른 희생양 찾기에 급급하다. 공정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비판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미개한’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빅라이(Big Lie)는 2차 세계대전의 주범 히틀러의 이론이다. 대중은 지도자의 큰 거짓말에 대해 처음에는 부정하거나 의심하지만 계속해서 반복하면 믿는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오른팔 괴벨스는 “만약 거짓이 들통 나면 그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덮어씌우라. 누구든 범죄자를 만들어 주마”라고 말했다. 빅라이 이론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 적나라한 증거가 지난해 12월9일부터 31일까지 23일간 진행된 철도노조 파업이다. 철도파업 내내 조합원들은 귀조노조·철밥통·독점운영·방만경영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보수언론은 왜곡보도와 여론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괴담 유포의 진원지인 셈이다. 반면 정부는 수서발 KTX 분할이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 ‘경쟁체제’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이 지은 <빅라이>(부제 : 철도파업 23일의 기억)(매일노동뉴스·1만5천원)는 23일간의 철도파업을 생생히 기록하는 동시에 철도 민영화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철도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수서발 KTX 분할이 전임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답습한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돼 온 토건·관료세력의 민영화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들이 어떻게 철도로 상징되는 공공부문을 무너뜨렸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23일의 철도파업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경찰의 민주노총 난입과 보수언론의 여론호도, 철도공사의 해고·징계·손배가압류 협박 속에서도 조합원들이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들은 공공철도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과 54년 어용노조를 깬 민주노조의 역사, 그리고 국민의 지지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은 끝까지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빅라이>는 파업에 나선 조합원과 가족들의 훈훈하고 절절한,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합원들은 '직렬5기통 춤'으로 맞섰고, 가족들은 “힘내라”고 응원했으며, 예비노동자들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지원했다. 철도노동자들은 그렇게 함께 갔다가 함께 왔다.

<빅라이>는 철도노조와 조합원들의 역사다. 지난 10여년간 철도 민영화에 맞서 투쟁하고 깨지며 버틴 그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그간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칼럼 <철로역정>에서 '빅라이' 시리즈도 책에 담았다. 부록으로 논문 ‘한국 철도구조개혁 10년의 평가와 과제’가 실려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빅라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대운하는 아니고 4대강이다, 댓글은 작성했지만 대선개입은 없었다, 전화는 했지만 외압은 없었다, 민영화가 아니라 경쟁체제다….

<빅라이>는 철도파업 23일의 기억이자 철도 민영화 종합보고서다. 박근혜 정부의 빅라이에 속지 말고 공공성을 지키자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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