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에겐 대한민국은 이미 지옥이었다.’

어느 네티즌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건을 접하고 남긴 한 마디다. 경북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됐음에도 또다시 참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학생에 이어 고교생들이 희생됐다.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의 행렬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진주의 한 고등학교에선 학교폭력으로 두 학생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인터넷 게임에 빠진 한 아빠가 28개월 아들을 입과 코를 막아 살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이, 청년들이 수난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입시와 취업 문제로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은 화젯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이러니 청년들은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내고 있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안전을 최우선의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안전한 한국사회’를 만들겠다며 각종 안전대책을 추진했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지난해 5월에는 ‘국민안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부처 차관급으로 구성된 안전정책조정회의를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의 성찬이었다. 그 때 뿐이었다.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 후 “안전 점검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던 박 대통령은 할 말이 없게 된 셈이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증언을 미뤄보면 이번 사건은 ‘인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구조된 세월호의 조타수 박모씨는 17일 “선박의 선미 부분 증축으로 무게중심이 높아진 데다 항로 변경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세월호를 소유한 청해진항운이 일본에서 이 배를 들여올 당시 전시실을 만든다며 1개 층을 증축했다는 것이다. 선박사가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 배의 구조를 바꿨다는 증언인 셈이다. 수백명의 행락객이 타는 여객선의 불법 개조에 대한 정부 당국의 사전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월호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15일 당초 출항시간(오후 6시30분)보다 늦은 오후 9시에 출발했다. 안개가 짙어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다 풍랑마저 높을 정도로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런데도 세월호는 출항을 강행했다. 도착시간에 맞추기 위해 속도를 내고, 항로를 무리하게 변경하다보니 이번 사고가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이런 정황들을 보면 선박사인 청해진항운이 이번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재라고 규정하는 이유가 충분한 셈이다.

선박사고는 무엇보다 초동대처가 중요하다. 순식간에 선박이 침몰하기에 구조시간을 단축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당국의 초동대처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침몰되는 세월호에서 구조요청을 한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부모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세월호의 구조요청에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은 민간 선박이었다.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탈출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정부 당국이 생존자 수를 두고 오판하고 있는 사이, 많은 생목숨이 수장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구조작업마저 잠시 중단된 상태다. 이날 현재까지 9명 사망, 실종자 287명에 달한다. 실종자 가운데 240여명이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박 대통령은 17일 오후 전라남도 진도 사고 현장을 방문해 구조작업을 독려하는 한편 진도실내체육관에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을 규명할 것"이라며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엄벌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말은 허망하게 들린다.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와 세월호 침몰사건에서 보듯 박 대통령이 약속한 ‘안전 한국’은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고위 관료들을 문책한들 실효성이 있겠나.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내건 ‘안전 한국’ 정책부터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유가족들은 "지금까지 정부에 속고 또 속았다"며 "구조작업에 투입된 인원이 너무 적다"고 거세게 항의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문책이 아니라 즉각적인 구조작업과 정확한 정보제공이다. 실종된 학생들과 승객들이 구조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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