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지난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철도소위) 활동이 공식 종료됐습니다. 지난해 12월30일 설치돼 활동을 시작한 지 3개월 보름 만입니다. 철도소위는 지난해 23일간의 철도파업 결과 철도노조와 정치권의 합의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례적인 정치권의 중재로 철도파업이 일단락됐을 때 언론에서는 이제야 정치가 제 역할을 하는구나 하고 일말의 기대감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하기만 합니다. 철도노조는 논평을 통해 "깊은 실망"이라고 했습니다.

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극한 대립과 갈등, 노조 파업에 대한 정권 차원의 무자비한 탄압과 사회적 공론화 부재의 악순환을 철도소위 활동을 통해 모두 해결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날 정치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철도파업의 핵심 쟁점은 ‘국고로 건설된 고속철도 노선을 철도공사가 아닌 다른 법인에게 운영권을 주는 것이 현행 법률로 가능한지 여부’ 와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대한 민영화 논란’이었습니다. 철도소위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에 대한 민영화 방지대책으로 법 제정을 주장하는 야당측과 주식회사의 정관으로 민간매각 방지가 가능하다는 여당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수서발 고속철도는 흑자가 예상되는 노선으로서 공공부문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어떤 형태로든 공공성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민간매각을 방지하는 장치를 확고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함”으로 최종 합의됐습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민영화 방지입법을 관철하지 못한 것입니다.

야당은 한미FTA 등 국내법에 우선하는 통상조약들이 발효된 이상 국가기간망의 핵심인 고속철도에 대한 외국자본 진출과 민영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당의 반대 근거는 개별 산업마다 민영화 방지대책을 입법화하면 법체계가 흔들리고 과잉입법이 우려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철도 민영화 방지법을 만드는 사례가 있느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국토부가 벤치마킹했다는 독일철도는 우리나라 헌법과 같은 독일연방기본법(Grundgesetz)에 철도에 대한 국가 소유와 공기업을 통한 운영을 규정했습니다. 연방철도(장거리철도)는 정부투자기관으로 운영돼야 하고, 그 활동은 궤도의 건설, 유지보수 및 운영을 포함하며 소유권은 연방정부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근거리철도는 주정부에 이양할 수 있도록 기본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소유·운영하는 우리나라의 지방지하철 공사와 유사합니다. 이를 두고 독일의 각 철도운영주체들이 경쟁을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나라도 이미 1974년 서울지하철 개통과 서울지하철공사 설립으로 경쟁체제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90년대 이후 독일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추진할 때 가장 큰 선결과제는 헌법 개정이었습니다.

민주주의 기본원리는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에 있고 특히 ‘법률에 의한’ 행정과 법률의 해석과 적용을 주업무로 하는 사법부의 기능을 볼 때 ‘법률의 제정권자’로서 의회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의회의 행정부 감시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법률을 통한’ 감시와 견제입니다. 국회의원들이 1년에 한 번 국정감사 때만 피감기관들을 호통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가 법에 따라 집행을 하고 있는지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법률로서 행정부의 독단을 막을 제도를 만드는 것이 의회, 즉 정치의 역할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은 당시 미국민에 대한 영국의 일방적인 세금 징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습니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유명한 구호에 등장하는 대표는 오늘날 의회이고, 과세의 주체는 왕에서 행정부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행정부의 권력은 비대해졌습니다. 모든 예산과 정보를 독점하는 국가권력과 날로 막강해지는 시장권력에 비해 의회권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됐습니다. 정치는 점점 축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는 동안 고삐 풀린 자본과 그를 대변하는 국가권력에 의해 정치의 주체인 노동자·시민의 권리는 18세기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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