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지난달 27일 재판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판결문 하나가 책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문에는 이렇게 기재돼 있었습니다. "피고가 원고에게 한 별지1 기재 각 옥외집회금지 통고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지난해 5월31일부터 6월26일까지 대한문 앞 집회에 대해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이 한 옥외집회금지 통고처분은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승소판결문이었습니다.

같은해 6월 전쟁터와 같았던 대한문 앞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와 서울 중구청은 위 옥외집회금지 통고처분을 근거로 쌍용차 범대위의 대한문 앞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집회물품을 강제로 수거했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생명줄과도 같은 분향소가 철거된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짐짝처럼 들려 나갔습니다. 경찰들의 조롱을 감내해야 했고 온갖 수모를 당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김정우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연행돼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연대하는 시민들과 천주교 신부님·수녀님들이 아니었다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저 또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낮에는 경찰서들을 돌며 연행자들을 접견하고, 밤에는 김정우 전 지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 및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사건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김 전 지부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막지 못했고, 옥외집회금지 통고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도 기각됐습니다. 집행정지 신청 기각으로 쌍용차 범대위의 집회는 불법으로 간주됐고 경찰관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졌습니다. 그만큼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받는 고초와 수난의 정도가 깊어졌습니다. 김 전 지부장에 대한 구속적부심 청구사건도 비관적이게 됐고 10개월 가까이 구치소에 갇혀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통과 수난을 감내하고 또 감내해야만 했던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옥외집회금지 통고 처분이 무효라는 판결문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이 판결문과 함께 김정우 전 지부장에 대한 체포 및 구속은 무효인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에 근거한 것이므로 부당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김 전 지부장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김 전 지부장은 보석으로 석방됐습니다.

옥외집회금지통고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사건과 무효확인 본안사건에 제출한 주장과 입증자료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고, 본안에서는 무효라고 판시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위법한 행정처분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피해를 입는 긴급한 상황에서는 그 목소리를 외면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뒤늦게 이같이 판결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에게 법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세상이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으로 진보하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누군가가 금속노조 건물 엘리베이터에 붙여 놓은 노조 선전물의 제목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법원, 노동자가 낸 소송은 거북이걸음, 회사가 낸 소송은 속전속결.”

노동자들이 노조파괴·불법파견·정리해고·부당노동행위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긴급하게 조력을 해야 할 국가기관이 귀를 닫아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수많은 시간 동안 한(恨)은 차곡차곡 쌓이고, 재판을 이겨도 그 한(恨)이 서린 오랜 시간을 온전히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도 노동자들의 한(恨)이 서린 판결문이 나오고, 판결문을 손에 쥔 변호사는 헛헛하게 그 판결문을 바라볼 뿐입니다. 언제까지 이러한 현실을 용인해야 하는지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자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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