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영문도 모른 채 죽어 간 종군위안부 소녀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이 한두 번으로 되겠습니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위령제는 계속 개최할 생각입니다."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인보다 더 관심을 갖고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 '오키나와에서 배워 행동하는 모임-혼백의 모임' 고문인 나카다 이사무(66·사진)씨가 그 주인공이다.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나카다씨는 "종군위안부 위령제에 대한 일본 극우세력들의 방해와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면서도 "위령제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우익세력 방해 극심, 그래도 위령제는 계속할 것"

철도노동자 출신인 나카다씨는 2006년 퇴직 후 평화운동에 남은 인생을 쏟아붓고 있다. 10여년 전 노조 평화교육의 일환으로 가게 된 오키나와에서 제주 4·3 사건을 알게 됐고, 조선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접했다고 한다.

2008년 60주기 4·3 위령제 참석을 계기로 한라산회(제주 4·3을 배우고 행동하는 모임)를 만든 나카다씨는 2009년부터 '제주 4·3' 회보를 만들어 일본인들에게 4·3 사건을 알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키나와 외딴섬인 아카지마에서 죽어 간 조선인 종군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을 위한 위령제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그간 묻혀져 있던 요나구니지마 학살사건을 세상에 끄집어낸 것도 나카다씨다.

요나구니지마는 1944년 10월 대만에서 오키나와 미야코지마로 향하던 기범선이 요나구니지마 구부라항구에 정박해 있다가 미군 함대의 폭격으로 53명의 종군위안부 중 46명이 학살당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오키나와 역사공부를 하면서 46명의 종군위안부가 비명횡사한 사건을 접하게 나카다씨는 섬 이곳저곳을 돌며 주민들을 만나고 자료를 취합했다. 2012년 일본의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조선인 종군위안부 요나구니지마 위령제 실행위원회'를 만든 나카다씨는 지난해 3월 위령제를 처음 개최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직접 팸플릿을 만들어 가가호호 주민들을 만났지만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일본 전역에 있는 우익들로부터 '전화 테러'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위령제 장소를 허가해 준 지자체에는 하루에 수백통씩 항의전화가 폭주했다. 주민 중에서 뽑힌 위령제 실행위원장은 "요나구니지마에서 종군위안부 학살은 없었다"는 전화 테러에 시달렸다.

나카다씨는 "우익들은 '위안부는 있었지만 종군위안부는 없었다', '종군위안부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사실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주민 여론이 반반으로 갈린 것도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요나구니지마에 자위대 배치를 둘러싸고 주민들의 찬반 여론이 나뉘면서 자위대 찬성 주민들을 중심으로 위령제 개최에 대한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그는 "요나구니지마에서 학살당한 종군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7월에 있을 아카지마·요나구니지마 위령제에 더 많은 한국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위령제를 무사히 개최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아베 정권, 사실과 현실에서 눈 돌리지 말아야"

나카다씨는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역사교육에서 교과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지론을 밝히기도 했다.

"(역사교과서를) 진보가 쓰던 보수가 쓰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에 다가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과서를 가지고 역사를 다 알 수도 없거니와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직접 현실에서 역사적 사실을 접해 나갈 수 있도록 교육을 하는 게 진정한 역사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군위안부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 같은 행사들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모르쇠하는 아베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아베 정권은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눈을 돌리려고 합니다. 아베는 사실과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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