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정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최근 진행한 사건 중에 단체협약이 근로기준법에 어긋나거나, 기존 근로조건을 심각하게 저하시켜 조항 자체의 효력을 다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법정에서 “이 단협은 이래서 문제이고, 이런 이유에서 이 규정의 효력을 인정하면 안 된다”고 설명하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 재판부에서 이런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런데 노조는 왜 이런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인가요? 근로자들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노조위원장이 단체협약을 체결한 이상 근로조건이 저하된다 해도 단체협약의 효력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지난한 노조의 역사를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나' 마음이 답답해진다.

2011년부터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됐지만 근로조건의 통일성 확보와 효율적인 교섭이라는 명목하에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강제했다. 이로 인해 근로자 과반수를 조합원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노조설립 후 몇 년이 지나도록 교섭테이블에도 앉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도 산별노조의 지부는 기업별노조와 별개로 교섭할 수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오히려 복수노조 제도하에서 소수노조의 교섭권이 대폭 축소됐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교섭대표노조만이 교섭권을 가지기 때문에 사용자의 ‘어용노조’ 만들기가 용이해졌다는 데 있다. 전에는 기업별노조가 어용노조라고 하더라도 산별노조 지부가 별도 교섭권을 가지며 견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창구단일화절차를 강제하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불가능하다. 사측이 과반수노조 하나를 포섭한 후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게 된 것이다. 사용자가 교섭에 참가한 여러 노조 중 한 노조만을 차별적으로 우대하는 경우에는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했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한 불리한 내용의 단체협약이 모든 노조에 고루 적용되는 경우에는 그 위법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복수노조 시행 이후 많은 기업, 특히 사용자의 인사권이 절대적인 중소기업에서는 어용노조와 사측이 결탁해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례로 택시업계 같은 경우 예전에는 실제 12시간 근무에 대해 소정근로시간을 하루 7시간30분 정도 인정해 줬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측과 어용노조의 담합에 의해 소정근로시간이 하루 5시간 정도로 변경된 곳이 많다. 실제 근무시간은 전혀 변화가 없는데도 하루 4시간의 소정근로시간에 상응하는 임금만을 지급하는 회사도 있는 형편이다. 실제 근무시간의 3분의 2를 무임금 상태에서 일하게 되는데도 사용자측에서는 단지 ‘교섭대표노조 위원장’이 인준한 단체협약이기 때문에 유효한 약정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할 뿐이다.

황당하게도 이러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교섭대표노조 위원장 중 몇몇은 포상(?) 차원에서 사측의 인사담당자로 발탁돼 노조탄압에 앞장서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다투는 사건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한 전 교섭대표노조 위원장이 임원 직함을 달고 법정에 나와 회사측의 입장을 강변하면서 내게 이렇게 훈계하기도 했다.

“변호사님은 아직 젊어 세상을 잘 모르나 본데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아. 어차피 바뀌지 않는 세상 누가 알아 준다고 이렇게 회사를 괴롭히나?”

이 같은 자기합리화를 제쳐 두더라도, 창구단일화 절차를 의무화한 현행 노조법하에서 회사의 자금력과 인사상 혜택을 등에 업고 성장한 어용노조를 넘어 교섭대표권을 획득하는 것이 상당히 험난한 길임은 자명해 보인다. 투쟁으로 법 현실을 바로잡아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지 않도록 입법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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