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지난달 말 한 사업장의 노조 위원장이 급히 찾아왔다. 스스로 신의 직장이라고 말하던 사업장이었다. 근속이 어느 정도 되면 연봉 1억원은 받는다고 노조가 조합원들 임금·복지보다는 비조합원인 비정규직을 챙겨줘야 한다고 위원장이 여유 있는 말을 내게 하기도 했던 사업장이다. 그런데 노조가 체결해 놓은 단체협약은 형편없었다. 임금·복지에 관한 조항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법보다 나은 조항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해 둬야 한다고 자문했다. 전임자·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관련 노조활동 보장에 관해서는 단체협약 요구안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얼마 전에 사장이 교체됐다. 새로 임명된 사장은 복지·전임자 등에 관해서 노조 상대로 뭔가 해 보려고 트집을 잡기에 나섰다. 기존에 보장해 주던 것을 더 이상 해주지 않겠다고 나오고 있단다. 단체협약에서 분명히 정하고 있지 않은 틈을 노린 거였다. 신의 직장이라고 했는데 소용이 없게 됐다. 이 사업장이 임금 조건에서 과연 신의 직장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법의 눈으로만 보는 나는, 이 세상의 법은 사업장에서 주인은 사용자라고 선언하고 있다고, 그러니 사업장에 신이 있다면 사용자일 거라고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사업장이 노조활동의 보장에서는 신의 직장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신의 직장이라도 노동자인 한 그의 권리, 그의 노조활동의 보장은 노조가 체결하는 단체협약을 통해서 보장받을 수 있다.

역시 지난달 말 사무실, 즉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에서 2014 임단협 쟁점 법률학교를 진행했다. 단체협약은 법보다 나은 노동자권리를 조합원에게 확보해 주기 위해 체결하는 거라고 나는 침이 튀도록 말했다. 도대체 노조해서 뭐한 거냐고 말하진 않았어도 나는, 이 나라 노조들, 노조간부들에게 사실을 말한 거였다. 그랬더니 한 사업장 노조간부가 내게 물었다. “법이 개악될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 법규정을 단체협약에 옮겨 놓을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연장·야간·휴일 근로의 수당으로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서 지급토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규정을 개정해서 가산율을 낮춰야 한다고 경총 등 사용자의 단체는 계속해서 요구하고, 노동법 교수 아무개 아무개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권리를 빼앗는 걸 아무렇지 않게 사용자도 심지어 노동법 학자도 주장해 대니 노동법이 개악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걸 걱정할 시간 있으면 조합원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요구하고 투쟁할 고민을 하라고 나는 단호하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기껏 내가 찾아낸 말은 이거였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서 법보다 나은 조항을 찾을 수 없었다며 제대로 된 단체협약을 체결해 두라고 자문해 줬던 신의 직장의 노조위원장의 얼굴이 떠오르는 거였다. 노동자권리는 노조가 교섭과 쟁의 등 투쟁으로 단체협약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떠들어 온 내가 계면쩍어진 날이었다.

대전충남 지역의 노조간부로부터 전화 연락이 온 것도 지난달 말이었다. 지금은 어떤 직책을 맡고 있냐고 나는 무슨 부장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에게 물었다. 그와 전화통화를 한 지도 삼년은 더 됐으니 그의 근황을 나는 알지 못했다. 예전에 내가 금속노조에 있을 때 처리했던 사건 하나를 물어보겠다고 전화한 거였다. 내가 직접 담당했던 사건은 아니고 사무실에서 누가 담당했던 거였는데 그게 누구였는지 가물가물했다. 금속노조 민주노총해서 망했다, 뭐 이런 인터뷰를 지회장이 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회사가 망한 뒤 후회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어떻게 활동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까마는 지회장으로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해서는 안 될 후회였다. 당시 노조가 확인한 바로는 그런 내용으로 지회장이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는데 기자가 제멋대로 기사를 작성해서 보도한 거였다. 당시 정정보도 신청을 해서 정정보도가 됐다고 기억 된다. 그때 그 인터뷰 기사를 누가 읽었는지 최근 그것 때문에 한 사업장이 금속노조의 가입을 꺼린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노조의 활동을 겪어 왔지만 노조 망하게 하려고 회사 문 닫는 것은 봤어도 회사 망하도록 노조활동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는 사용자도 노조가 겁난다고 호들갑이고 노동자도 노조가 겁난다고 야단이다. 신의 직장이 아니어서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조활동이 필요한 사업장인데도 노조가 겁난다고 야단이다.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때문에 2014년 임단협이 시끄럽다. 지난달 19일 고용노동부가 호봉제 등으로 운영되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급·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로 바꿔 내겠다고 발표한 매뉴얼로 노동자·노조조차도 야단이다. 이 매뉴얼은 법도 아니고 법해석도 되지 못한다. 사용자에게 사업장에서 활용할 임금체계의 개편안을 알려주고 그렇게 하면 어떤 이점이 있다고 설명해 주기 위한 자료에 불과하다.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안내서에 불과하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임금체계는 임단협 교섭 대상이어서 노사합의로 체결한 단체협약의 변경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이번 매뉴얼에 노조가 겁을 집어먹을 일도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노조 없는 노동자는 어째야 하냐고 걱정할 일이긴 하다. 그거야 이제라도 노조를 하라고 답해 주면 될 일이다. 물론 이렇게 답을 해 주기 위해선 매뉴얼에 따라 임금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사용자의 장단에 놀아나 노동조합이 조합원 임금권리를 저하시키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은 신의 직장이라고 피해 갈 수가 없다. 신의 직장의 노동조합이라도 고용노동부 매뉴얼대로 사업장의 임금체계가 개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신의 직장이라고 내게 말할 수 없게 될지 모를 테니 말이다.

또 삼성이었다. 얼마 전 삼성디스플레이가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 모두를 미국회사에 매각했다. 미국회사와 합작해 설립 운영해 온 삼성그룹사였다가 졸지에 순수 미국자본의 회사가 됐다. 그러자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을 추진했고, 나는 이를 자문했다. 그런데 지난달 삼성전자가 일본회사와 합작해서 운영해 온 회사의 지분을 모두 일본회사에 매각한다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해서 매각 대응을 하겠다고 사무실에 자문을 구했다. 둘 다 이제는 삼성이 아니라고 노조를 할 수 있다고 노동자들은 노조를 하겠다고 한다. 아무리 무노조경영의 삼성 노동자라도 고용 등 노동자권리를 지켜내기 위해선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다. 삼성 노동자들이 이러니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거다. 비록 그가 노조에 가입하고 있지 않아도 노조를 할 수 있다고 필요하면 노조를 하겠다고 알고 있다는 것이니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이 딛고 있는 노동의 대지는 결코 척박하지 않다. 삼성이 매각했다는 회사의 노동자는 물었다. "위원장 등 간부로 활동하다 해고되면 급여를 못 받으니 돈을 모아서 생활할 수 있게 해 줘야겠는데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나." 노조를 하면 불이익당할 수 있다는 것도 노조원이 아닌데도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알고 있는 거다. 이 나라에서 노조운동의 대지는 척박하지 않은데 노동자가 그 대지를 일구는 걸 방해해 대니 노조를 하려는 노동자들은 각오부터 한다. 삼성이면 신의 직장이라고, 더구나 엔지니어이니 이 나라에서 누구도 그가 신의 직장 삼성에서 일한다는 걸 감히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그라도 노동자인 한 그의 고용 등 매각에서 노동자권리를 지켜낼 수 있는 노동자의 조직적 무기가 노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신의 직장. 노동자에게 그것은 단순히 임금·복지가 최고로 보장된 사업장을 말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사업장에서 사용자에 복종해야 한다고 이 세상의 법이, 그 법을 구체적인 사건에서 법원의 판결이 말하고 있다.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에 따라 근로자로 정의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결코 신이라 불릴 수가 없다. 신의 직장에서 신, 사용자에게 복종하는 인간이 노동자다. 그는 노동자로서 자신을 말해야 한다. 그는 노동조합으로 교섭과 쟁의 등 투쟁으로 자신의 권리를 말해야 한다. 그것으로 쓴 단체협약으로 그는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권리선언을 할 수 있다. 노동하는 인간은 신은 될 수 없어도 노예는 아닐 수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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