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박근혜 정부가 규제완화의 칼을 꺼내 들었다. 지난달 20일 장장 7시간에 걸친 ‘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간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TV 생중계 이후 정부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교육부가 중·고교 인근에 호텔을 짓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푸드트럭 규제개선, 공인인증서·액티브X 폐지 등 정부는 41개 규제완화 과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5인 미만 사업장도 청년인턴을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노동·시민단체는 규제완화가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기업의 ‘숙원’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노동기본권을 규제로 보는 시각이 강해 규제완화의 칼이 ‘노동’으로 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3일 홈페이지에 국민 누구나 건의할 수 있는 ‘규제개혁 신문고’ 배너까지 설치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일까.

규제완화 전에 근로감독 사각지대 해소부터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

규제완화 열풍이 또 몰아치고 있다.

각 부처마다 TF팀을 구성해 규제 목록을 파악하고 규제완화 실적 쌓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불합리한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겠지만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노동자·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규제가 무분별하게 풀리면 환경 파괴와 함께 경제력 집중으로 양극화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던 경제민주화가 규제완화로 인한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왔다는 사실을 정부와 여당은 벌써 망각한 것인가.

역대 정권은 집권 초기 ‘규제개혁’을 외쳤고, 그 부작용은 결국 온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 지난 정권의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카드대란과 저축은행 줄도산 사태를 초래했고, 최근 개인정보 유출사태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노동규제 완화는 고용불안과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런데도 파견허용 업종확대 등 고용규제 완화조치를 이미 추진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파견노동·사내하청 등 이미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노동시간 규제의 사각지대로 인해 살인적인 장시간노동이 묵인되고 있는 상황과 매년 1조원이 넘는 임금체불 문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라는 오명부터 해결해야 한다. 규제완화보다 먼저 근로감독의 사각지대부터 해소해야 할 것이다.

민영화로 연결된 규제개혁, 공공성 강화 투쟁으로 맞불 놔야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박근혜 정부가 올해 국정운영 양대 축으로 삼고 있는 게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개혁이다. 공공기관 개혁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보여지니까 이제 규제개혁에 초점을 맞춰 밀고 나가는 듯 하다. 정부는 보건의료·교육·관광·금융·소프트웨어 분야 등 5개 서비스산업의 규제를 완화해야 일자리 창출이 된다면서 대대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나름대로 전술을 잘 쓰고 있다. 이를테면 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간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들을 불러들여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규제개혁인 것처럼 포장을 했다. 하지만 연내 시행되는 41개의 규제개혁안을 보면 대부분 대기업들을 위한 내용으로 흘러가고 있어 애초에 정부가 말했던 것과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 이것이 규제개혁의 본질이다.

정부는 규제개혁이 선이라면서, 규제개혁이 돼야 일자리 창출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개혁의 양면성을 봐야 한다. 특히 보건의료·교육 분야의 규제를 완화할 때 공공성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보건의료 분야다. 41개 규제개혁안에 의료법인 해외진출 지원과 원격의료 허용, 의료기기 제조업 업체별 허가가 포함돼 있다. 결국 규제개혁이 민영화·영리화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공공성 강화 투쟁으로 맞불을 놔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부동산 활성화 목적 규제완화, 옳지도 않고 효과도 없어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금융시장은 너무 많이 개방돼 새롭게 할 게 없을 정도다. 다만 빅데이터를 상품화하고 거래하기 위해 개인정보나 기업정보유통 관련 규제완화가 추진될 수 있다. 정보유통 규제완화는 국내 금융지주도 문제지만 외국에 본사를 둔 지주사의 경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8년 전에 SC은행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기업정보를 영국 본사에 넘겼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번 규제개혁의 목표는 부동산 활성화에 맞춰졌다. 부동산 규제를 풀어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다. 지난 정권부터 부동산 경기를 인위적으로 살리려는 노력이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재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정책은 이미 발표됐다.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묶어 놓은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건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될지는 의심스럽다. 지금은 다른 생산요소에 피해를 주고 있는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 토지국유제처럼 급진적으로 프레임을 바꿔 통제해야 한다.

우리는 규제되지 않는 자본, 특히 투기자본이 은행과 생산업체를 운영하면서 생긴 부작용을 수십 년 동안 봐 왔다. 쌍용자동차가 그렇고 론스타 펀드가 그렇다. 지금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금융자본을 직접적으로 규제해야 할 때다.

푸드트럭·액티브X 다음 타깃은 노동·환경·사회적 약자

 유병홍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는 일방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규제완화=선(善)’이라는 정부의 접근방식 자체가 틀렸다.

규제란 무엇인가. 시장경제 체제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택한 방식이 바로 규제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규제를 제대로 해서 시장경제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노동권 보호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규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근로기준법이나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규제의 내용이다. 그런데 ‘규제는 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 보호는 필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금 당장은 규제개혁의 논의가 푸드트럭이나 액티브X 같은 데서 출발하지만, 그 다음은 과연 어딜까. “액티브X 없애니까 편하지?”, “규제는 없앨수록 좋은 거야”라는 논리로 이어질 것이다. 규제의 빗장이 풀리는 것이다.

규제완화 논의에 대한 노동계나 시민단체의 대응도 걱정되는 수준이다. 언론에서 푸드트럭 타령을 하니 ‘나하곤 상관없는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인다. 이는 아주 큰 착각이다. 다음 수순은 당연히 노동에 대한, 환경에 대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규제완화다.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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