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는 지옥 그 자체였다. 갑작스런 2천646명 정리해고 통보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77일간 옥쇄파업을 했다. 조합원 1천여명이 파업에 나섰다. 온갖 고초를 겪었다.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냈다. 마지막날, 경찰특공대 투입으로 전쟁 같은 옥쇄파업은 막을 내렸다. 그 뒤 5년간 지부와 조합원들은 가시밭길을 걸었지만 77일의 파업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여기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당시 지부 파업을 깊숙이 지원했던 활동가 김혁씨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내 안의 보루>(컬처앤스토리·1만3천원)가 세상에 나왔다.

주인공 김준(김혁)은 잘 알려진 활동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2001년 대우차 농성투쟁, 2003년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투쟁, 2009년 쌍용차 파업투쟁 등 굵직한 투쟁의 현장에서 끝까지 함께했다. 이로 인해 모두 구속된 전력의 인물이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김준은 섬세한 남자다. 라벤더 향을 사랑하고 들풀을 보며 생기를 얻는다. 반면 투쟁현장에서 김준은 전략적이고 원칙적이며 뜨겁다.

한상민(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김준을 운명처럼 만나 77일을 함께했다. 한상민은 2001년 대우차 투쟁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쌍용차에게도 닥칠 문제라고 여겼다. 그래서 인천 산곡성당 농성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김준을 만났다.

2009년 다시 만난 그들은 뜻밖에 같은 고교동창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로서, 동지로서 두 남자는 서로에게 보루가 되며 77일을 동고동락했다. 정권과 사측의 위협 앞에서 조합원들은 지치고 흔들렸지만 한상민 지부장과 김준 활동가,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로 “버틸” 수 있었다.

이 책은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한상균 지부장과 김혁 활동가의 시선을 따라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진행 중인 쌍용차 투쟁과 조합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합원 다수의 경험을 온전히 녹여 내기엔 한계가 있지만 투쟁 과정에서 울고 웃고 고뇌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조합원들의 모습을 더듬기엔 충분하다.

옥쇄파업을 선택하던 당시의 긴박감도 느껴진다. 눈앞에 닥친 2천646명 정리해고. 노동자를 궁지로 몰아넣는 자본과 정권의 맨얼굴에 몸서리치며 조합원들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어렵게 파업을 결정한 뒤에는 협상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그만큼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소설을 쓴 작가 고진은 김혁의 친구다. 쌍용차 파업투쟁으로 김혁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듣고 '왜 김혁 그는 투쟁하는 삶을 선택했는가' 고민했다고 한다.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결정적인 단초는 김혁이 쓴 일기장이었다. 그가 감옥 안에서 쓴 일기는 24권이나 된다. 그래서인지 소설은 그의 생각을 읽는 듯 가깝게 다가온다.

쌍용차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7일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회계조작을 인정했다. 검찰은 그러나 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채 쌍용차 경영진과 안진회계법인을 무혐의 처리했다.

소설 속 그들처럼 한상균·김혁·쌍용차 노동자들은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복직이 되는 그날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출판인세 전액은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노란봉투>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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