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공인노무사
(법무법인 피플)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3구합52520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1. 사건의 개요

원고의 남편인 망인은 당진축협에 2001년에 입사한 후 10여년간 웅돈관리·사료판촉 등의 현장근무를 했다. 그런데 2010년 7월부터 기존에 담당하던 업무와 전혀 다른 업무인 충청남도 당진군 위탁사업인 분뇨처리 사업의 유치 등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그에 따라 컴퓨터를 사용하고 숫자를 처리하는 등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새로 시작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뒤진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 여기에 위 분뇨처리 사업과 관련해 당진군에 근무하는 친형을 통해 업무를 진행하라는 회사의 요청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특히 2010년 12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 살처분 매몰 작업을 수행했는데 작업 후 7일간 출근하지 못하고 자택에 격리된 데다 당시 매몰 작업의 내용은 갓 태어난 어린 가축을 포함한 소·돼지 등을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는 작업으로 이에 따른 정신적 충격 등이 더해져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도로 누적됐고, 그 때문에 발생한 우울증이 심화돼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게 된 사건이다.

2. 대상 판결의 요지

대상 판결은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인해 사망한 경우, 근로자가 업무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해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 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 등 참조) 했다. 위와 같은 업무와 질병 및 자살행위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대법원 2012. 4. 13 선고 2011두11785 판결 등 참조) 주장했다. 그러면서 망인의 사망을 변화된 업무로 인해 초래된 부담감과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 살처분 작업 등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발병했고 그로 인해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서 자신의 업무에 대한 걱정과 불안 등이 공동의 원인으로 작용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하면서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3. 대상 판결의 의의

대상 판결은 업무와 질병 및 자살행위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를 보통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자살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므로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발생했고 그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 내지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곧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부로 추단해서는 안 되며,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및 직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자에게 가한 긴장도 내지 중압감의 정도와 지속시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황과 자살자를 둘러싼 주위 상황, 우울증의 발병과 자살행위의 시기 기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기존 정신질환의 유무 및 가족력 등에 비춰 그 자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는 이전의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두2029 판결)와 “근로자가 자살한 경우에도 자살의 원인이 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 여부는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나, 당해 근로자가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는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앞서 본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고 판시하고 있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2. 3. 15 선고 2011두24611 판결)와 달리 근로자의 업무와 질병(우울증 등) 및 자살행위의 상당인과관계를 해당 근로자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수행한 업무와 우울증 등 질병과의 상당인과관계 및 자살행위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 사회평균인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업무와 재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원칙적 기준으로 해석되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5두8009 판결 등)와 배치되는 것으로 자살행위의 업무상재해의 인정이 제한될 것이다. 그리고 자살의 원인이 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발병을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의 판단은 재해자 본인을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그로 발생한 자살행위와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면서는 사회평균인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이 또한 정신적으로 급박한 상태에서 이르게 된 자살행위를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돼 자살행위의 업무상 재해의 인정을 제한할 수 있다.

망인의 사망에 대해서 원처분기관(근로복지공단)은 유서가 발견된 점 등을 사유로 조절 불가능한 불가피한 충동에 의한 자살행위가 아닌 계획적인 자해행위로 판단해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서 대상 판결은 망인의 사망을 망인의 생전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상재해라고 판단하면서 유서를 작성했다는 사정만으로 망인의 자살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은 유서의 유무를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함에 있어 필요한 요건으로 생각해 결정하는 원처분기관의 경향에 대해서 다수의 판례와 같이 유서의 유무보다는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에서 수행한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 그로 인해 발병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4. 결론을 대신해

지식정보화산업과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증가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높은 자살률 등으로 근로자들의 자살이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자살을 업무상재해에 해당하는지를 다투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 발맞춰 최근 법원에서도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여 자살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하는 판결(서울고법 2013. 12. 19. 선고 2012누27505 판결)을 하는 등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란 자살자의 심리적 자살원인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조류독감로 인해서 가금류에 대한 살처분이 대대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이 업무에 동원되는 근로자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살처분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들이 대상 판결의 망인과 같은 극단적은 선택은 없도록 살처분 외의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 부득이 살처분을 할 수밖에 없다면 가축의 살처분으로 고통당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심리적 치료방법을 모색하는 등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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